Sempio
History

1946/2018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입맛은 변하고, 우리 식탁의 풍경도 참 많이 변해왔다.
식문화의 변화를 따라가며, 때로는 이끌어가며 함께 해 온 샘표의 발자취.

1945년 광복 이후
1945

다시 찾은 민족의 빛, 8·15광복

한반도 전체가 광복의 기쁨으로 넘실대던 1945년 8월 15일.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우리 민족이 맞닥뜨린 것은 배고픔과의 싸움이었다. 당시 가정에서는 식탁에 올라가는 대부분의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장독에 담근 장, 직접 뽑아낸 국수 등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먹거리를 주로 즐겼다.

<8·15 당시 복사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11574
1946

샘표창립 ‘내 가족이 먹지 않는 것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

1946년 8월 20일, 샘표가 조업을 시작하였다.

1949

한국, 세계보건기구(WHO) 가입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최고의 건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하는 세계보건기구가 1948년 설립되었다. 한국의 가입 신청이 1949년 제2차 로마 총회에서 승인되었다. 세계보건기구 가입국은 세계 보건수준 향상확보에 공헌하겠다는 의무를 지는 것과 동시에, 국내의 제반 보건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겠다는 약속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식품 산업의 근간을 다지다

휴전 후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도정, 제분 등의 식품 공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집 밖에서 식료품을 사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자리 잡아갔다.

텅 빈 장독대를 대신해 우리맛을 지켜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서, 이전처럼 집에서 장(醬)을 담가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특히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겐 장(醬)을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샘표는 장(醬)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개념이 전혀 생기지 않은 시장에 간장이 없어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장(醬)을 먹을 수 있도록, 저렴하고 깨끗한 장(醬)을 만들어 판매하였다. 또 장(醬)을 사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직원들이 손수 간장병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간장의 맛을 보이는 방법으로 샘표를 알려나갔다.

1950

한국전쟁 발발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개시되어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만 3년 1개월 2일간 계속되었다. 그 동안 쌍방은 38도선을 각각 3회씩이나 넘나들면서 남으로는 낙동강, 북으로는 압록강까지 오르내리며 전 국토의 80%에 달하는 지역에서 전투를 전개했다.

<북한군 남침>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48204
1953

휴전 협정 조인

한국전쟁 발발 후 1년간의 격전 끝에 전선이 대체로 38도선 부근에서 교착되기 시작한 1951년 6월을 전후하여 휴전 논의가 제기되었다. 남북 쌍방이 전쟁을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협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적 단안을 내림으로써 1951년 7월 휴전 회담이 시작되었다. 회담 기간 중 양측은 1회의 예비회담을 비롯하여 159회의 본회담, 179회의 분과위원회 회담, 188회의 참모장교 회담, 238회의 연락장교 회담 등 총 765회의 회담을 갖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 2년에 걸쳐 진행된 한국전쟁의 휴전회담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회담이었다.

<휴전회담장의 휴전협정 취재보도진> 출처: 알아봅시다! 6·25 전쟁사 제3권
(고지쟁탈전과 휴전 협정)
발행: 국방부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소장: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48202
1954

맑고 깨끗하게 솟아오르다: 샘표 상표 등록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고 장(醬)의 수요 역시 늘어나게 되었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장류는 품질이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있다. 이에 우리는 품질이 좋은 고급간장을 만들어 공급하기로 하고 천연양조 순곡간장을 제조하였으며, 이 간장에 샘표라는 이름을 붙였다. 1954년 5월 11일, 샘표 상표를 특허출원(등록번호 제362호)하였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표로 이어져오고 있다.

소비자카드제도 실시

1954년, 샘표는 고객 관리와 판매 촉진의 일환으로 소비자카드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고객 정보를 카드에 기입해두고, 전화 한 통이면 집에서 간장을 받아볼 수 있는 제도였다. 오늘날에는 전화 주문, 온라인 쇼핑이 흔한 일이지만 당시 소비자카드를 통한 고객관리와 전화주문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후 카드가 1만장이 넘을 정도에 이르게 되자 불광동지구, 성북지구, 영등포지구, 청량리지구 등 가정배달만을 전문으로 하는 직매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1954

보릿고개를 넘어

전쟁의 포화는 사그러들었지만 연례 행사처럼 찾아오던 보릿고개는 여전했다. 지난 가을 수확한 곡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오뉴월이 농민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이후 196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농가소득이 늘어나며 보릿고개는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들녘은 늘 그렇게 푸르기 시작했으며 봄은 늘 화사한 색깔로 오는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버린 세월에 저 편에서 춘궁이니 추궁이니 보릿고개니 피곡이니 하는 말과 봄의 맹령 가을에 폐령 하는 가슴 아픈 원력들이 있습니다. 조금 전 뉴스를 끝내고 퇴근한 이등열 앵커가 얼마전에 책을 펴내면서 자신은 어릴 때 밖에 나갔다 오면은 배가고파서 곧잘 빈 솥뚜껑을 열어보곤 했다고 책 쓴 까닭을 썼는데 그 때 부엌데기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쑥죽을 쑤는 가마솥을 지켜보던 우리들의 가여웠던 소년기. 봄은 계절의 시작이 아니라 탄식의 시작이었으며 묵은 곡식은 벌써 떨어지고 해 꼬리는 그나마 여물지도 않아 우리가 견디기 힘들고 넘기 힘들어 부르던 보릿고개는 소리 없는 형장이었습니다. 아 그래서 도시의 골목마다 시골의 사립마다 빈 깡통을 두레박처럼 들고 서서 밥 좀 줘요 밥 좀 줘요 외치던 우리들의 애처롭던 변성기. 그래서 산에 올라 진달래 잎도 따먹고 쑥도 캐고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거나 운이 좋아 칡뿌리라도 캐 허기를 달래 왔던 그 때. 그리고 오늘. 봄 하면 이제 나들이 상춘을 떠올리게 되는 우리들. 망각의 피안에 있는 그 보릿고개 봄들은 잊을 수 없는 고통의 계절이었습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9월. 남도 어느 지방 사흘을 굶은 남매가 밥 달라고 조른다고 정신이 나간 어머니가 우물에 빠져 함께 자살하려고 하자 엄마 이제 밥 달라고 안할게 우물에 빠뜨리지 말라고 애걸했다는 그래서 삼모자가 실신했다는 이 사연은 같이 굶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고 이제는 밥달라고 조를 엄마마저 잃은 아이들은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위를 맨발로 다니며 먹성이 될만한 것들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원래 장판에서나 보던 장타령꾼의 각설이타령이 우리가 거지라고 걸인들의 타령이 된 것은 전쟁이 끝나고 해가 바뀌면서 아침, 저녁으로 밥구걸 나서는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서 부터였습니다. 그러나 그 각설이타령도 용심스런 사람들이 자줏빛 서리게 흥얼거린 것이었고 배 굶는 아이들은 같은 또래 아이들이 학교 갈 시각 무렵쯤 해서 대문 앞에 와 밥 좀 줘요. 구슬프게 외쳐댔었습니다. 성한 사람도 그럴진데 몸이 성치 않은 사람들의 먹성 해결은 더욱 힘든 일이였습니다. 특히 나환자들의 구걸행위가 급격히 늘어나고 나환자들이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헛소문이 번져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는 바람에 성한 사람은 물론 성치 않은 사람들 걸식행위가 여간 힘들지 않게 됐습니다. 그러기도 했거니와 나환자들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어 1952년에는 나환자가 급속히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판에 사흘 굶어 도둑질 않는 사람 없다고 훔칠 것조차 없던 그 때. 굶주린 우리들이 훔쳐 잡곤 하던 것이 보신탕거리였습니다. 냇가에 솥단지 걸어놓고 이상한 냄새나는 고깃국을 무슨 고기인지도 모르고 빙 둘러앉아 먹던 그 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전쟁통에 이리저리 떠돌던 여윈 검둥이가 보이지 않게 되어서였습니다. 하도 보신탕 추렴이 늘어나서 전쟁이 끝난 이듬해 1954년 그래서 서울에는 보신탕 금지령까지 내려졌었습니다. 아무려나 그 보신탕 금지령도 몇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봄은 절망의 계절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은 여전히 쌕쌕이 소리가 들판을 훑듯 지나가는 땅심이 여려져 먼지 풀풀 이는 밭을 가는 쟁기에 금속성 소리마저 유난해 쌕쌕이 쳐다볼 겸 농부들은 그제서야 휘어진 듯 한 허리를 펴곤 했습니다. 아직 햇보린 여물지도 않았고 난리통에 도대체 무엇이 남아있을리도 없건만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장독뚜껑을 열어보지만 헛간에서 쓸어 모은 볍씨를 키로 까불어 한 끼에 연명을 하는 방법 그 밖에 어떤 수단도 우리들에겐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보릿고개는 굶주림과 고통으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보릿고개 삼년에 북망산천 넘어간다는 말을 실증이라도 하듯 휴전이 된 그 해 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주리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10명에 1명꼴에 가까운 이백만 명을 훨씬 넘어섰고 이에 굶어죽은 사람만도 백사십 명 또 생활고를 비관해 백사십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따위의 다른 나라 소식을 듣고 있는 굶어죽는 아사자. 그리고 불과 십년 전도 채 안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자들이 우리 세대들의 몰골로 우리 주변에 널려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전국적으로 쌀 생산량이 천만 섬을 겨우 웃돌던 그때. 마을과 마을을 돌며 산에 나무를 해다 팔거나 댓싸리며 대비자루를 엮어 장에 내다팔아 겨우 지전 몇 장으로 한 끼를 떼우면 그것으로 그만이었고 밥 달라 투정하는 철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물 캐러 또 산에 올라 쑥도 캐고 칡뿌리라도 캐줄 상이면 입가가 시커멓게 물들도록 칡뿌리를 씹으며 허기진 배를 묘하게 달래보던 그 때. 남의 밭 품앗이라도 해서 얻어온 보리쌀 됫박은 며칠이 못가 바닥이 나고 그러면 다시 슬그머니 바가지를 들고 보리쌀을 꾸러 가던 우리들의 어머니. 그렇게 한 됫 박 보리쌀과 들에서 캐온 쑥을 섞어 쑥죽을 끓이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부엌 가마솥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죽 끓는 냄새는 배를 더 곯게 했고 이윽고 사발에 남아있는 밥 한 톨까지 다 훑어먹었을 때에 우리들 그 포만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은 참 어렵기 때문에 들판에 가서 쑥을 캐다가 쌀 한주먹씩 넣고 죽을 쒀서 또 끼니를 이루고 또 그도 모지라면은 산에 가서 소나무를 껍질을 벗겨다가 또 죽 쌀을 한주먹씩 넣고 또 죽을 끓여서 우려먹고 참 그 때는 어렵습니다. 어째서 그러냐 그러면은 쌀도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나지 않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요.”

그렇듯 너나없이 먹을 것에 개걸스러워졌던 그 때. 갯가에서 해온 철엽거리를 채 끓일 틈도 없이 날로도 먹어 배앓이가 그치지 않던 그 때. 1957년 7월 정부가 모처럼 걱정을 해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은 삼남지방에 간디스토마 환자 110만 명이 앓고 있었습니다. 봄이라 새학기가 시작되도 학교가는 아이들 학교 못가는 아이들이 반반이었습니다. 1956년 통계로 전국에 절량농가가 110만 명이었습니다. 굶어가면서 학교 다닐 만큼 우리 형편이 그런 것도 아니고 또 호남지방에 경우 10만4천명이 굶어죽는다고 정부에 구호요청을 했으나 당시 농림부와 보사부가 서로 자기네 일이 아니라고 미루는 바람에 정부에 대한 불신도 그만큼 커져 돈 없는 집안에서는 그까짓 공부해서 뭘한다고 학교 안 보내는 집들이 많았습니다.

“국민학교도 나오기 약간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뭐 있다는 사람이 중학교 정도고 그랬지. 여기서는 의식주가 우선 문제였었지 뭐 학교는 그 다음 같았어요. 웬만한 가정이면 지금 고등학교 이상 보내고 있고 중농이면 다 대학교 지금 보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달라졌어요.”

급기야 1957년에는 경상북도에서 굶는 집 아이들 천여 명이 오월 달에 학교를 퇴학해야만 했는데 같은 말 서울에서는 어린이헌장이 제정된 선포된 아이러니컬한 사연까지 곁들여졌습니다. 그래서 농촌사람들은 서울에 가면은 그렇게 굶지 않겠다싶어 서울로 서울로 괴나리봇짐 같은 보따리를 안고 몰려들어 1960년대까지도 서울역 앞은 무작정 상경한 시골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무렵 1957년 전쟁의 유복자처럼 내버려졌던 이른바 혼혈아들. 이 땅에서는 제대로 먹고 제 대접받고 살기가 어려워진 혼혈아 80명이 처음으로 미국 입양 길에 오릅니다. 이 때 입양 길에 오른 어린 혼혈아들이 성장을 해서 지난해 모국 아닌 모국으로 돌아왔을 때 굶주림을 벗어난 그들의 성장에서 우리는 세월 그 크나큰 궁핍의 여울이 이미 우리를 가로질러 갔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런저런 삶의 불안은 때로는 우리들 부정의 늪으로 몰고 가곤 했습니다. 경제적 고도성장을 이룩했다고 하던 저 70년대까지 남해안을 무대로 엄청난 수법의 밀수가 성행한 것은 그 지긋지긋했던 가난의 망령이 되살아날 것을 두려워 한 우리들 어처구니없는 소행이었거니와 1960년대 어느 해는 부산의 밀수꾼이 경찰관을 납치해 반죽음을 만든 사건도 벌어졌었습니다. 60년대가 열리면서도 보릿고개는 여전했지만 그러나 아무리 가난해도 봄은 봄이었습니다. 벚꽃이 오를 때쯤 되면은 사이다 한 병에 삶은 달걀 몇 개, 그리고 김밥이라기보다는 김말이 밥이라고 불러야 더 어울릴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을 걸리고 업고 해서 가는 곳이 62년에 세워져 우리나라 최초인 삭도라고 불리던 케이블카가 있던 남산 기슭이나 정릉 빨래골 골짜기였습니다. 어쩌다 아이들 성화에 창경원이라도 갈라치면은 원남동 거리와 대화동 노타리는 모처럼 나들이를 나선 한복차림의 인파에 묻혀버렸고 동물원 원숭이는커녕 동물 우리만 쳐다보다 지쳐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서울사람들의 경우였고 남도사람들 가운데는 진해 벚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대단한 경우였을 뿐. 봄은 여전히 농촌사람들을 꼼짝없이 묶어놓곤 했습니다.

“30년 전 이면은 그 때는 뭐 이 교통도 발달하지 않고 이래가지고 한껏 나들이라야 산골 계곡에 가서 뭐 붕어나 가재나 잡아서 철엽을 해서 이렇게 하루씩 즐기고 그때만 해도 서울 가서 창경원 구경을 하면 그 때는 아주 제일 자랑거리로 여기고 이렇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산업이 발달하면서 각지를 이렇게 관광하고 다니니까 참 뭐 격세지감이 들죠.”

그 절망의 봄 들. 고작해야 앞산 칡뿌리 검댕이에 우리 입이 까맣게 절어버렸던 그 때. 장리쌀 꿔먹고 곱쌀미 한 그릇을 탄식처럼 비워버렸던 우리들 보릿고개의 한. 밥 좀 줘요. 낯선 대문을 두드릴 때 빈 깡통 내밀기가 죽기보다 더 수치스러워 돌아 나오며 울던 우리 소년기의 봄. 봄의 보릿고개를 넘기면 가을 피고개가 기다리던 우리들 사계. 그리고 불과 십년 전도 안된 그 무렵까지도 모든 것이 가난으로 탓해지던 그 때. 일할 거리도 없던 봄 날. 그나마 일한 만큼 대접받을 수 없었던 그 봄들. 나들이라고는 군대 간 아들 면회길이 고작이었던 우리들의 가련했던 어머니들.

“열아홉에 시집와서유. 시집살이도 많이 하고 지금 같은 좋은 세상에 낳았으면 얼마나 좋아유. 왜 옛날에 생겨나서 고생도 많이 하고 시집살이도 많이 하고 보리방아 찧기 싫고 또 물레질해서 명가서 길쌈 해입고 그런데 구경도 옛날에는 시상에 이렇게 발달됐다 좋다고 그래도 내외하고 문 밖에 안나갔잖아유 여자들이. 그래서 구경도 못하고 만날 집에만 있다가우리 아들들이 죄 시켜줬어요. 구경이란 구경은 뭐 고수동굴이니 뭐 저기 성주굴이니 그런데 다갔슈. 가는 데 다 갔슈. 이제 구경 다 댕기고 내년 봄에는 인제 지 아버지 태워서 제주도 한번 가면 다 되는 거유.”

그러나 그런 절망의 봄을 숱하게 보내고 오늘 우리가 맞는 이 봄에 화창함은 비단 봄철의 여름수박을 먹을 수 있어 좋다거나 어디고 나들이 길에 나서서 누구나 가족들과 더불어 즐거운 소풍을 할 수 있어서 더더욱 화창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허기져지면 가난 탓을 할 수 없게끔 된 우리 주변과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난으로 탓해지던 십년 이십년 삼십년 전 그때와는 달리 이 봄은 누구나 스스로의 뜻에 따라 일하며 또 일한만큼 잘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확신하게 해주는 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많은 것을 잊을 것입니다. 우리가 겪어온 그 궁핍의 보릿고개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느 외국영화에 슬로모션으로 비춰지는 낭만의 들녘으로 비춰질까 걱정도 들고 도대체 밥 좀 줘요 라고 외치던 우리 장년세대의 변성기가 무슨 말이냐고 다그칠지 모르는 우리 아이들. 아 그래서 일일이 보리피리 불며 간다던 문둥이 시인 하나운이 생각나는 봄 그 밤입니다.
<보릿고개>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Q0000780

1956

상공부, 수출 5개년 계획 수립

상공부에서는 1956년 12월 6일, 경제부흥을 위한 수출 5개년 정책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주요 내용은 기간산업의 건설촉진으로 외화절약을 도모하고, 대외수출개선을 위한 무역체제를 확립하며, 수출 5개년계획을 추진, 1억불의 외화를 획득한다는 것 등이다. 「수출진흥요령」으로는 외국원조자금을 수출업자에게 우선배정, ICA(국제협조처,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자금과 관련한 아국(我國)물자의 수출 비중 확대, 우방국과의 무역협정 체결, 관세법 개정, 수출외화의 수입계정구좌간 이체 허용, 특정상품의 한시적 수출시장 독점 허용 등을 제시하였다.

1958

샘표간장, 서울 밤하늘을 수놓다

1958년 샘표 충무로공장 3층 옥상에 샘표간장의 커다란 네온사인이 설치되었다. 네온사인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당시, 통행금지 시간 이후의 어두운 서울의 밤을 '샘표간장' 네 글자가 환히 밝힌 것이다. 샘표의 네온사인이 서울 시내의 화젯거리가 되면서 1년 새에 매출액이 몇 배나 오르기도 했다.

창동공장 및 연구실 완공(제1차 완공 규모 812평)

1959년 샘표는 충무로 공장에 이어 창동에 공장을 건설했다. 이때, 창동에 연구실 시설을 완비하여 품질관리를 위한 제도. 기술. 보증방법을 도입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국내 사기업으로서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샘표의 발효 연구실은 오늘날 국내 최고의 발효 전문 연구소인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의 효시가 되었다.

1959

샘표간장, 세계로의 첫걸음

우수한 품질로 국내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샘표가 엄격한 품질 기준을 요구하는 미8군에도 간장을 납품하고 있다는 사실이 홍콩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홍콩 소재의 회사인 영화공사(永華公司)에서 샘표에 제품 수출을 요청하였고, 같은 해 10월, 샘표 간장은 홍콩으로 역사적인 첫 수출을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총 수출 규모는 미화 10,000불이었다. 샘표 간장의 해외수출은 국가적인 경사로 대한늬우스에 보도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수출되는 공산품
정부의 중소기업육성책과 더불어 품질이 향상된 우리나라 중소기업제 생산품도 속속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데 이번에 서울에서 열린 국산품 전시장에는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나전칠기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시장에 인기품으로 수출되고 있는 인삼단을 비롯해서 샘표 간장 등의 수출 국산품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또한 샘표 간장은 지난 11월 홍콩으로 처녀 수출되어 부산항에서 선적 수출됐는데 수질이 좋기로 이름난 우리나라의 간장은 동남아 지역에서 한층 수요가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품질이 좋아진 국산품을 애용해서 우리는 자립 경제 확립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대한늬우스 (59.11.29)> 출처: KTV

식품 마케팅의 태동

설탕, 인스턴트 라면 등 각종 가공식품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나라의 식품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시기가 1960년대이다. 특히 1960년대 초 민간 상업 방송이 등장하면서 방송 광고가 본격화된 것도 식품 마케팅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더 큰 도약을 준비하다

창립 이후 맛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은 샘표. 1960년대는 샘표가 더욱 체계적인 회사의 모습을 갖추고,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틀을 잡은 시기이다.

1961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부르기도 쉽고 외우기도 쉬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흥얼거렸던 샘표의 CM송.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귀에 익숙한 샘표 CM송 '샘이 나 샘표'는 당시 국민가요 못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작사·작곡: 김호길(대표곡: 하숙생_최희준)
가수: 김상희(대표곡: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1962

한국 발효기술의 발전을 바라보다: 대학생 대상 연구실 개방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절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샘표의 경영이념에서 보여지듯, 샘표가 가장 주력한 부분은 품질관리였다. 1962년 품질 관리 업무를 더욱 과학화하기 위해 연구실을 확장하고, 최첨단 연구 설비를 추가로 도입하였다. 샘표 연구실의 규모와 우수한 시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우리 회사의 연구실에서 실습을 원하는 대학생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샘표는 매년 방학 기간 동안 대학생들이 학습과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구실을 개방하였다.

샘표간장 성분 규격화

식품위생법이 제정되던 바로 그 해, 샘표는 간장의 성분을 규격화하였다. 이미 1959년 창동 공장 완공과 동시에 국내 사기업 최고 수준의 연구실 시설을 완비하여 품질 관리를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식품위생법의 제정에 발맞추어 누구보다 빠르게 간장 성분을 규격화할 수 있었다.

1962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설립

정부 주도로 시작한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62년 서울시 중구 저동2가 25번지 한일은행 별관 건물에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설립되었다. 이 무렵 한국의 수출액은 연간 5천만불이었으며, 1963년에는 처음으로 농산물 수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첫 수출 품목은 누에고치였다.

식품안전 법제 체계화 식품 위생법 제정

식품위생법은 1900년부터 존재하던 식품관련 위생법규를 통합하면서 제정되었다. 1962년 제정된 초기 식품위생법은 기준/규격 마련, 위해 식품 판매금지 등 오늘날 식품위생법의 근간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47개 조항으로 시작한 식품위생법은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 증가와 함께 질적/양적으로 성장하여 오늘날 102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3

인화, 신용, 봉사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샘표의 정신적인 기둥인 사훈이 제정되었다.

인화, 신용, 봉사의 의미

「인화」(人和)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자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존중하고 아끼는 것이다.
「신용」(信用)
신용은 유일한 재산이며 회사발전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기업신용만은 꼭 지켜 불신풍조를 정화하고 신용사회를 이루겠다는 기업정신이다.
「봉사」(奉仕)
좋은 제품을 생산하여 소비자가 마음놓고 애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쿠리펀드 융자

1963년 국내 농작물의 흉년으로 간장의 원료가 되는 대두 역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치솟은 대두의 가격 때문에 샘표는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국민 식생활의 중심이 되는 장을 생산하고 있는 샘표가 원활한 생산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융자하여 정부 보유분의 대두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63

양곡소비 제한조치

흉년이 들어 곡물의 작황이 좋지 않아 정부에서는 양곡소비 제한 조치를 내렸다. 세부 내용으로는 점심에 쌀로 된 음식 판매 금지, 양곡을 원료로 하는 양조, 제병, 제과, 제이, 조미료, 차류 제조 금지 등이 있다.

조미료 열풍

'미원'이 발효공법으로 대량생산체제에 돌입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조미료를 공급하여 맛의 혁명을 일으켰으며 이에 제일제당 미풍도 조미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군소업체에서 가짜 조미료를 만들어 파는 사건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1964

중앙식량대책위원회 발족

원활한 양곡 수급, 곡물가격 안정으로 국민의 생활 안정 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중앙식량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1966

간장에 대한 규격 제정 공포

1966년 10월 14일, 정부는 최초로 식품에 대한 기준 규격을 제정 공포하였는데 대상이 된 품목은 주류와 간장이었다. (보건사회부령 제206호) 주류와 간장이 국민 식생활의 주 소비 품목이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공장에서 만드는 장이 깨끗하며 과학적임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 홍보하였다.

1968

장독대 없애기 운동 전개

서울시는 도시생활합리화 운동의 하나로 시재정과 민간 자본을 투입하여 대규모의 순한국식 간장 및 된장 공장을 세워 약 일백만명의 영세시민에게 간장과 된장을 공급하기로 하였다.

손님 : 어머, 있구나.
주인 : 얘, 들어와. 어떻게 용케 찾았구나.
손님 : 아이그. 찾는데야 소질있지. 잘있었니?
주인 : 응.
손님 : 야, 집 하나 멋있다.
주인 : 멋있긴. 얘 정화야.
손님 : 어.
주인 : 아니, 아줌마한테 인사 안해?
손님 : 정화야, 아줌마야. 자, 아따.
주인 : 자, 들어가자.
손님 : 응.

주인 : 너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니?
손님 : 어. 소금 좀 사려고 시장에 들렸는데...

주인 : 왜, 장 담그려고?
손님 : 응, 모레가 좋은 날이라나. 어, 근데 너 장 담글 준비 다 했니?
주인 : 장은 무슨 장이니. 장독대 없앤지가 벌써 언젠데.
손님 : 뭐? 아니...
주인 : 사다리가 바로 장독대가 있었던 자리야. 얼마나 좋냐. 진작 없애려 그랬어. 장독대 없앤다니까 할머니께서 온통 야단이시더니 막상 없애고 나니깐 오히려 칭찬 하시더라.
손님 : 아니 그렇지만 우리나라 풍속에는 장을 담그지 않으면 간장은 어떻게 먹니?
주인 : 어떻게 먹긴. 사먹지.
손님 : 아이그, 너 팔자 한번 좋구나. 그런것까지 다 사먹고.
주인 : 얘, 사먹어보니까 여러모로 아주 편리하더라.
손님 : 아니 그럼 간장, 된장, 고추장 그런걸 모두 다 사먹는단 말이지?
주인 : 이제부턴 김치도 사먹을 작정이야.
손님 : 얘얘얘, 누가 들으면 웃겠다. 젊은 것이 뭐이 귀찮아서.
주인 : 아니, 귀찮아서가 아니지. 너도 알잖니. 장독대가 있으면 얼마나 힘이 들고 불편하다는걸.
김장때만하더라도 말이야.

나래이션 : 네. 불편하고 힘들다는거야 주부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실것입니다. 우선 김장철부터 주부의 마음은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해마다 한번은 꼭 겪고 있는 이 김장철에 너나없이 김장을 합니다만은, 목돈 걱정에다 온통 집안이 엉망이 되서 허리를 펴지 못하면서도 그새 이렇게 야단 아닙니까.
김장이 끝나면 꼭 치르는 것이 몸살병이라는 거죠. 이렇게 무리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뿐만이 아니라 서울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 김장 쓰레기는 트럭으로 4만 1424개를 쓸어내야 하니 자그마치 6636만원이라는 경비가 듭니다.
이 돈이 다 어디서 나옵니까. 여러분의 부담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장이 끝나면 김장 항아리를 땅속에 묻어두고 하루에도 꼭 두세번은 꼭 허리 운동을 하시는 주부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리 아름답지는 못하죠.

이제 또 봄이 되서 집집마다 장을 담그고 있습니다만은 이 콩 메주 좀 보십시오. 꼭 이렇게 불결한 것을 먹어야만 합니까.
우리 가정에서 장 담글때면 이것도 김장 못지 않게 요란합니다. 시골에서 메주를 날라오는가 하면은 시골 할머니까지 동원되고 야단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간장은 먹을 수 있을텐데 좀 생각하실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장독대가 필요한 모양입니다만은 이런 장독대 있는 집 치고 뜰 넓은 집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높다란 장독대도 생기게 되고 주부들의 다리 운동은 고사하고 장독대 주위는 언제나 불결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묘한 생리를 가진 장독대 위에 된장독 속에는 그새 애써 만든 보람도 없이. 이거 말이됩니까. 왜 이런 벌레가 생긴 것을 그냥 걷어 버리고 먹어야 합니까.
거기다 때로는 쥐가 목욕한 간장도 그대로 퍼먹어야 하니 위생상에도 좋지 않습니다.

그 뿐입니까. 이사 한번 하려해도 그 장독대 때문에 골치를 앓지 않습니까.
아이고, 이거 일년 간장 농사 헛진거죠.
주인 : 이렇게 불편하고 보기 흉한 일이 없도록 장독대 대신 정원으로, 또 아이들의 공부방이나, 놀이터로. 그게 얼마나 현실적이냐.
손님 : 아이 그렇지만 요 맹추야, 그렇게 다 사먹다는 음식 맛이 제대로 나느냐 말이야.
주인 : 얘, 너 모르는 소리 하는구나. 사먹는 장도 간을 맞춰서 먹을 수 있지 않니. 조선 간장이란 소금이 조금 더 들어있을 뿐이지. 맛이야 사먹는 간장이 더 낫지. 그러니 소금을 더 넣고 공장에서 만든 간장을 사서 먹어봐. 맛도 좋고 또한 싸게 먹히지.
손님 : 넌 어쩌다가 그런 초 현대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니.
주인 : 아파트 생활 하는 사람들좀 봐. 장독대 없어도 잘만 살지 않니. 직업 여성은 더욱 말할것도 없고.
손님 : 하기야 식생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은 나도 찬성이다만은.

나래이션 :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재래식인 식생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문화가 향상되려면 우선 의식주부터 개선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진 것만은 사실입니다만은 그것은 주로 입는 옷이나 사는 집에서만 뚜렷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지 식생활에 있어서는 아직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벗기 위해서 품질 좋고 영양가 높은 식품이 시중에 많이 생산 공급되고 있습니다.
간장만하더래도 지난 한해동안 전체 소비량의 50% 이상이 공장 제품으로 공급됐고 된장이 약 20%, 고추장이 약 10% 공급됐으며 그 용기도 가벼운 프라스틱 제품 등으로 편리한대로 쓰실 수 있도록 마련돼 있습니다.
이러한 장류는 오늘도 철저한 품질 관리 상태 하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량 생산으로 가격을 싸게 해서 금년에는 간장을 70% 가량 공급할 계획이며 된장과 고추장은 각각 50%씩 공급함으로써 1970년에는 모든 가정이 공장 제품을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다만, 김치가 좀 문제가 됩니다만은 현재 시에서 착수 단계에 있는 소채 단지와 김치 공장을 직접 연결시켜 보다 싼 값으로 일반 시민에게 공급되도록 추진 중에 있으며 김치 공장은 가급적으로 연내에 설치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식품들은 다른 제품과는 달라서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품질 검사를 철저히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비자를 보호해서 우리의 식생활을 더욱 기름지게 하는 하나의 방편인 것입니다.
또한 길거리에 나돌고 있는 간장은 우리 인체를 해치는 불량품이므로 사용하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런 불량품을 식별하실 수 있도록 장의 조합에서는 제품별로 검사 필증을 첨부하도록 돼있습니다.

주인 : 이제부턴 그만 장독대가 필요 없게 된거지.
손님 : 얘길 듣고 보니 정말 그럴듯도 하구나.
주인 : 처음에는 다 그런거 아니니. 드레스 입고 결혼식 올리는 것도 얘, 옛 조상이 봤을땐 기절했을거 아니야. 마찬가지지. 언젠가는 꼭 그럴 때가 올 거니까.
손님 : 하하하. 그러니 선경지명이 있어야 한다 그거지?
주인 : 그래. 우리 젊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속히 앞장서면 그만큼 식생활 개선이 빠를거 아니야.
손님 : 야, 너 참 말도 많이 늘었구나. 오늘 내 오길 잘했나보다.
주인 : 군소리 말고 너도 그 지저분한 장독대 없애는게 좋을거야. 언젠간 후회할테니까.
손님 : 하기야 후회하는 일은 하지 말랬으니까.
주인 : 그러니 이번 기회라도 늦지 않으니 내 말대로 한번 해 봐.
손님 : 그럼, 나도 시어머님을 잘 설득시켜 봐야겠구나.
주인 : 얘, 요새 시어머니야 우리보다 더 신식이더라, 얘.
손님 : 나도 어쨌든 장독대를 없애지.
주인 : 강습료 톡톡히 내야 한다.
손님 : 어. 돈 좀 모아서.
주인 : 아이그, 요 깍쟁이.
<식생활이야기(장독대 없애기)>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3395
1969

창동공장 3차 확장 완공

믿을 수 있는 품질로 서울 지역에서 75%가 넘는 점유율을 달성하며, 샘표는 소매상에서 연일 품절 사태를 빚곤 했다. 연간 간장 생산능력 2,723㎘인데 반해, 군납 매출을 제외한 일반 소매 간장 매출량이 4,427㎘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에 샘표는 1969년 창동 공장 3차 확장 공사를 마치며 연간 생산량을 10,000㎘로 증대하였고, 명실공히 한국 장유업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밑거름을 마련하였다.

1969

분식 장려의 날 시행

정부는 1960년대부터 범국민적인 절미 운동과 혼∙분식 운동을 추진하여 부족한 양곡을 보충하고자 하였다. 절미 운동은 새마을운동의 일부로써 가정에서의 쌀 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이고, 혼·분식 운동은 잡곡을 섞은 혼식밥과 밀가루 음식먹기를 권장한 운동이었다. 1969년부터는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 일명 ‘무미일(無米日)’로 정하여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규제하였다.

<중앙 긴급식량 대책위원회 회의>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43764
사람은 누구나 적은 돈으로 많은 효과를 얻기 원합니다. 특히 현대인은 빈틈없는 계산 하에 그 생활을 꾸며가고 있습니다. 여기 생활이 비교적 윤택한 한 가정이 있습니다. 알뜰한 주부는 솜씨를 살려서 반찬을 맛있게 마련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밥만은 자녀의 건강을 위해서 흰 쌀밥만을 항상 먹입니다. 거기다가 식사가 끝나면 각종 영양제까지도 준비해서 건강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흰 쌀밥만 먹이고 영양제까지 복용하니 이 주부의 정성은 지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가정 식구들의 건강은 보기에 그렇게 좋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자랄수록 혈색이 나빠지고 차츰 말라가며 가끔 앓기까지 합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즉 이 주부는 결과적으로 병 주고 약 주는 잘못된 식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잘못된 원인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이 가족의 영양섭취 중 70%나 되는 흰 쌀밥에 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식생활을 고쳐서 값싸고 손쉽게 영양관리를 해결하자는 것이 바로 보리혼식과 분식장려입니다. 즉 흰 쌀밥 대신 수제비, 빵, 라면, 보리밥, 만두 등을 먹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보리나 밀가루는 영양가가 쌀보다 많습니다. 즉 쌀은 맛은 있지만 첫째로 비타민 B₁이 모자랍니다. 비타민 B₁이 부족하면 각기병, 입병 같은 질병이 걸리기 쉬운 것입니다. 그리고 각기병 외에도 신경통, 건망증, 식욕부진, 피로감 등 여러 가지 병 증세가 비타민 B₁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병 증세를 없애주는 비타민 B₁을 밀가루는 쌀보다 무려 3배나 더 많이 가지고 있고 보리쌀은 그보다 많은 4배 정도나 더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나이에 신체 발육이 다른 어린이. 그것은 골격을 만드는 칼슘 섭취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칼슘을 보리나 밀가루는 쌀보다 2배나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피와 살을 만드는 영양소인 단백질, 이러한 인체에 절대 필요한 단백질의 함유량도 보리쌀과 밀가루가 쌀보다는 2배 정도로 많습니다.
빈혈의 원인을 없앱시다. 그러자면 철분이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철분의 경우를 보아도 밀가루는 쌀보다 4배나 더 많고 보리는 무려 10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쌀밥은 손으로 이겨보면 알듯이 전분이 조밀하고 끈기가 강합니다. 그래서 식사를 하면 위벽을 헤치고 소화분비액의 방출을 약하게 만들어서 소화를 늦게 합니다. 그러나 보리밥은 끈기가 쌀밥보다 적어서 소화를 잘 시킵니다. 보리밥을 먹으면 배가 금방 꺼진다는 것은 그만큼 소화를 잘 시킨다는 것이며 쌀밥이 오래 배부르다는 것이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또 쌀의 전분은 짠 소금을 많이 빨아들이는데 소금을 너무 먹으면 식염과다증에 걸립니다.
영양섭취에서 섬유소는 빼놓을 수 없는 성분인데 쌀에는 섬유소가 없고 보리에는 위장에 좋은 이상적인 짧은 섬유소가 많습니다. 그리고 위장에는 원래 해로운 세균이 많은데 섬유소가 이 세균을 없애주는 역할도 해주는 한편 섬유소는 원래 맑은 공기를 수반하는 까닭에 위장 내에서 공기를 좋아하는 몸에 이로운 세균의 번식을 잘 시켜줍니다. 그리고 섬유소는 우리 체질에 많은 변비를 없애줍니다. 또한 섬유질은 얼굴에 기미, 주근깨를 방지하고 피부에 젊음을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분식, 혼식은 여자분 들이 더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보리혼식은 쌀 3알에 보리 1알을 섞어 먹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우리의 건강에도 좋고 또 값도 싸서 일석이조의 이득을 보는 보리혼식을 우리는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3대1이라는 숫자를 잊지 마십시오. 쌀 3알에 보리 1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수명이 긴 고장은 보리와 잡곡의 생산·소비량이 제일 많은 경상남도, 전라남도, 제주도라는 것도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는 보리생산량이 모든 국민이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많고 정부에서도 먹기 좋고 영양분도 더 많게 가공처리해서 시중 가격과 같이 공급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어린이에 비해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그 체력이 고르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출생해서 1년만 지나면 외국 어린이의 성장률이 우리 어린이보다 훨씬 빠르다고 하는군요. 턱걸이 한번 못해서 애쓰는 이 어린이의 체력, 이것은 바로 어린이 자신만의 책임은 아닐 것입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어린이의 체력향상을 위해서 하루 두 끼는 분식을 장려합니다. 그 한 예로 일본의 국수종류 소비량은 우리보다 60배나 되는데 인구비율을 생각해보아도 적어도 우리보다 20배 이상은 더 국수로 식생활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 우리도 잘못된 우리의 식식생활부터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 자녀부터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체력을 키워 줘야 하겠습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리가 뒤떨어진 것은 결코 기술만의 부족이 아니라 체력에서부터 뒤떨어졌다고도 하겠습니다. 즉, 영양관리에서부터 그들에게 진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바로 분식과 혼식을 하는 길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체력은 향상되고 더 나아가 국력도 강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알고도 행하지 못함은 모르고 행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나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부터라도 보리혼식을 시작합시다. 오늘 점심때부터라도 분식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귀여운 우리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보리혼식과 분식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 해님보고 방긋 웃는 꽃송이 같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송이 같이 해님보고 방긋 웃는 꽃송이 같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송이 같이 너도나도 곱게곱게 어서 피어서 새 나라의 꽃이 되자. 대한 어린이 ♬
<식생활개선위해 보리혼식과 분식 장려의 이점소개>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3243
"얘야 숭늉 다오"
오늘 아침도 아버님은 식사를 안 하시고 역정만 내십니다.
"내가 시골 식몬가? 일꾼인가?"
나는 모 회사의 후생과장으로 가정에서도 적극 분식과 보리혼식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가족들의 불평이 여간 아닙니다. 아버님은 물론 큰딸애도 매일 보리밥만 싸가자니 창피하다는 겁니다.
"빵은 애들 군것질이나 할 것이지 그게 끼니가 되나?"
보리 혼식과 분식 장려 때문에 저는 직장에서도 불평의 소리를 듣기가 일쑤입니다.
"과장님, 점심밥에 보리 좀 안 섞을 수가 없을까요?"
"그게 다 여러분들의 건강을 위해서 섞는 겁니다."
"피~ 돈을 조금이라도 아낄려고 그러시죠. 과장님 우리도 건강을 위해서라면 매일 불고기를 먹도록 하면 더 좋잖아요."
"그럴까. 우선 이리들 않지"
"네"
"모르는 소리야. 우리 형편에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나. 내 알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보지."
자 그럼 우선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사자는 고기만 먹는 육식동물입니다. 그런데 사자의 장은 크고 짧습니다. 한편 풀만 먹는 채식동물인 토끼는 장이 가늘고 길어서 신장의 25배나 된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식을 주로 하여온 서양 사람은 채식을 주로 한 동양사람 보다 장이 굵고 짧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어쨌든 채식을 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체질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보리밥 보다 쌀밥이 좋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그 왜 도시에서 소화가 잘 안되는 허약한 사람도 시골에 돌아가서 보리밥을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사실입니다. 쌀은 첫째로 그 전분의 끈기가 매우 강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쌀로 떡을 만들어 보면 알게 됩니다. 떡을 손으로 이겨 보면 이렇게 끈기가 강합니다. 이것을 먹으면 떡은 위벽에 붙어서 위액의 분비를 억눌러 위의 활동을 약화시킴은 물론 위 팽창을 가져오게 합니다. 즉 흰 쌀밥의 소화시간은 2시간 15분이나 되는데 보리혼식은 그 반인 1시간 15분이면 소화를 시키게 됩니다.
"그것은 확실히 쌀보다는 보리가 소화를 잘 시킨다는 증거입니다."
"과장님, 그렇지만 소화만 잘 시킨다고 보리밥만 먹을 수 있어요."
"음식은 영양가와 맛도 생각해야 하지 않아요."
"음. 물론이죠. 쌀은 맛이 있고 그것대로의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아둘 것은 영양 면에서 쌀은 보리나 밀가루 보다 못합니다. 그리고 쌀은 영양소가 대부분 표피부분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도정하는 과정에서나 밥을 지을 때 쌀을 씻게 되므로 비타민은 거의 씻겨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우리가 밥을 먹으면 이것이 포도당으로 돼서 체내에서 탄산가스와 물을 분해하는 연소과정에서 비타민 B₁이 필요하게 되는데 쌀은 비타민 B₁이 보리보다 훨씬 적습니다. 비타민 B₁이 부족하면 각기병, 식욕부진 등의 병 증세가 나타납니다. 비타민 B₁ 이외에도 칼슘은 보리가 쌀보다 2배, 철분은 무려 10배, 인은 2배 반 이나 영양가가 많습니다.
"자 어때요. 이제는 보리가 어느 정도 우리 몸에 좋은지 대강 알겠죠. 그리고 보리는 쌀 보다 좋은 점이 또 있어요. 즉 얼굴에 기미가 낀 여성들의 미용 효과에도 보리는 아주 좋다는 겁니다."
"네"
"과장님 그럼 그것도 아주 말씀해 주세요."
"아, 잠깐 시간이 됐으니 이거 시간이 됐으니 근무부터 해야지. 자 그럼 오래 살고 싶으신 분, 그리고 얼굴이 예뻐지고 싶으신 분은 이따가 조용히 우리 집으로 찾아와요."
"어머 과장님도"
"자 그럼 여러분들이 오셨으니, 오래 살고 싶으신 분을 위한 얘기부터 계속을 해봅시다."
여기 흰 쌀밥과 보리밥, 그리고 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빵은 소금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흰 쌀밥은 소금 없이 먹기는 곤란합니다. 주먹밥에 깨소금을 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 인체에 적당한 하루 평균 소금 섭취량은 13g인데 현재 우리 국민은 그 3배 내지 5배까지 염분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 식탁에 오르내리는 짠 반찬들이 그것을 말해주지 않습니까. 바로 이 소금의 과잉 섭취가 고혈압은 물론 신장 및 심장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또한 노화를 촉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래 살고 싶으신 분은 쌀밥 보다는 보리밥이나 분식이 좋다는 겁니다. 자 그럼 다음에는 여성의 미용효과에도 관계있는 보리와 섬유질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합시다."
여러분 보리를 그릇에 담아서 갈면 솜 같은 것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미용효과에도 좋은 섬유질이고 이 섬유질은 소화를 잘 시키고 장내에서 인체에 좋은 세균을 번식시켜 줍니다. 그러나 쌀에는 보리 같은 섬유질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먹는 음식의 섬유소가 적으면 장의 활동을 둔화시켜 변비의 원인이 됩니다. 여러분 보리혼식으로 특히 여성들은 기미 없는 어여쁜 얼굴을 유지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과장님 요사이 분식도 많이 장려하는데 밀가루의 영양 효과도 그렇게 좋은 것일까요?"
"네, 여러분은 우선 밀가루가 모든 곡물 중에서 제일 영양가가 많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밀가루 음식은 첫째로 쌀보다 칼로리가 높고 단백질은 70%나 더 많으며 비타민 함유량은 거의 배나 됩니다. 그래서 분식은 특히 어린이의 인체발육에 가장 유익한 것입니다. 분식에는 라면과 식빵을 비롯해서 국수, 수제비, 만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양분이 많은 분식을 하게 되면 우리들의 건강은 물론 생활경제에도 크게 보탬이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전 국민이 하루 한 끼씩 분식을 하면 연간 1천만 석의 쌀을 절약할 수 있어 쌀의 수입 국가에서 오히려 쌀이 남아 수출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가족의 건강관리와 국가 경제적으로도 유익한 이러한 보리 혼식이나 분식을 우리는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정부에서는 비타민 B₁과 칼슘을 강화한 영양 강화, 눌린 보리를 가공해서 싼 값으로 일반 시중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 눌린 보리는 철저한 위생 관리 하에 가공돼서 밥을 지을 때 씻을 필요도 없고, 또 두 번 삶을 필요도 없어 주부들에게 많은 일손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농림부에서는 건강한 체력향상으로 행복한 가정을이룩하기 위해 온 국민들에게 보리 혼식과 분식장려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숭늉 좀 다오"
이제 우리 가정에도 보리 혼식과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됐습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도 우리 가정처럼 분식과 혼식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혼·분식 좋은점의 과학적 설명으로 보리혼식과 분식 장려>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3397
우리의 주식인 쌀은 그 생산이 수요에 모자라고 보리쌀은 남아 돌아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올해에도 350만섬의 보리를 수매하고 있습니다만은 재고량 300만섬을 합치면은 많은 양의 보리가 묵게 되는 실정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해마다 400만섬의 양곡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5인 가족이 한달에 55,000원짜리 일반미를 먹는 대신에 8:2의 혼합곡 23,760원짜리를 먹는다면은 한달에 31,240원이 절약됩니다. 그렇게 해서 절약되는 돈은 1년이면은 374,880원이 되는 셈입니다. 마침 최근에 꽁보리밥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옛날에 향수를 부려 찾는 이도 있겠지만은 보리의 영양에 대한 뒤늦은 인식에서 보리밥을 찾는 이도 있습니다. 또 여름 보리밥은 우리 전래 계절적 별미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쌀과 보리쌀의 영양가를 비교해보면은 쌀의 영양가를 100으로 했을때 칼로리를 제외한 단백질, 지방, 칼슘, 비타민 등의 갖가지 영양가는 보리가 쌀보다 훨씬 높습니다. 보리밥 외에도 보리쌀을 이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보리의 영양가를 알고 분별있는 보리혼식을 한다면은 건강에도 좋고 나라 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보리혼식>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1130

더욱 다양해진 식품 시장

경제와 교통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지역간 접촉이 빈번해졌다. 이후 지역 고유의 이름을 붙인 음식점들이 인기를 끌며 이른 바 ‘관광음식’이라는 풍토가 생겨났다. 또한 식품 공장에서는 케첩이나 마요네즈 같은 새로운 식품 가공품들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육류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수입산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쌀과 보리가 귀해 밀을 활용한 음식이 많았으며, 100% 쌀밥 대신 잡곡을 섞어 먹자는 혼식 장려운동이 전개되면서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샘표장유양조장, 샘표식품주식회사가 되다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좋은 품질의 많은 제품이 요구되는 시대, 샘표는 보리차, 옥수수차 등 차(茶)류 및 농수산물 통조림을 생산할 수 있는 조치원식품 주식회사와 양포식품 주식회사를 관계사로 설립, 종합식품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더욱 성장 발전하기 위한 발판을 다졌다.

1971

종합식품회사로의 도약, 샘표식품 주식회사로 거듭나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업무가 분화됨에 따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샘표장유양조장에서 '샘표식품공업주식회사'로 회사의 형태를 변경하였다.

1971

한국, 국제식품 규격 위원회 가입

1971년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식품에 대한 기준 규격을 포함하는 식품법전이라 할 수 있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국가간 원활한 교역을 도모하였다.


1973

조치원식품 주식회사 설립

샘표 '복동이 엄마'는 누구?

샘표 CM송의 '복동이 엄마'는 70년대 캐릭터로 만들어져 여러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그란 눈, 오똑한 코, 귀여운 새댁 이미지의 '복동이 엄마'는 샘표간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품의 주인공으로 등장, 큰 인기를 끌었다.

1975

샘표 소고기짜장 CF, 국내 최초로 세계광고 CM페스티벌 입상

샘표 소고기짜장 CF가 ‘제15회 세계광고 CM페스티벌’ 에서 한국 CF 최초로 수작(秀作)상을 수상하였다. 해당 대회에는 세계 13개국에서 12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되었으며, 4살짜리 여자 어린이를 모델로 하여 상업CM의 선입감과 저항감을 없애는데 성공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요건 몰랐지 요건 몰랐지
샘표 짜장면 샘표 짜장밥
요건 몰랐지 요건 몰랐지 ♪

맛있는 샘표 소고기 짜장
<샘표 소고기짜장 CF>
1976

양포식품 주식회사 설립

안심하고 드세요: 샘표 공장견학 시작

식품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많은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1970년대에는 그만큼 검증되지 않은 불량 제품도 많았다. 심심치않게 불량 식품에 대한 뉴스가 터져나왔고, 가공 식품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만 갔다. 이러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 샘표는 업계 최초로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공장 견학'을 시작했다. 더욱이 사장님이 직접 TV모델이 되어 깨끗한 제조공정에 대해 광고를 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많은 주부들이 샘표 공장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샘표식품 사장 박승복 : 샘표 가족 여러분, 안심하고 쓰십시오.

나래이션 : 샘표는 간장 제조 회사로 40년을 한결같이 보다 맛있고 좋은 간장을 만들기 위해 연구 노력하면서 우리의 식탁을 지켜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샘표 간장은 15년 전부터 미국, 구라파 시장에서도 일본의 유명 간장과 당당히 맞서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상표입니다. 믿고 쓰십시오. 샘표 간장

샘표식품 사장 박승복 :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공장견학 CF>
1976

물가표시제 최초 실시

1976년 5월 1일 보건사회부 고시 13호로 환경 및 식품접객업소의 가격표시제를 최초로 실시하였다.


1977

다양한 기술 개발을 위한 발판: Q.C. 제도 도입 운영

샘표는 QC(Quality Control)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운영하며 기술개발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다양한 종류의 통조림을 비롯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다.

샘표 소면, 짜면(짜장국수)의 인기가 높아지다

쌀과 보리가 귀한 탓에 밀 가공품인 국수를 많이 먹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국수의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 품질이 우수한 샘표 국수, 특히 샘표 소면과 짜면이 큰 인기를 끌었다.

1977

쌀 소비 억제정책 해제

1977년 크게 풍년이 들어 쌀 수확량이 사상 처음 4천만 석을 돌파하면서,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113%에 이르렀다. 정부는 잉여 쌀 7만톤을 인도네시아에 대여하였고, 쌀 소비억제정책을 전면 해제하였다. 잉여곡물이 생기기 시작한 1970년대 말, 비로소 ‘음식’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식단을 관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계속된 대풍작과 쌀 수확 4천만 섬 돌파로 쌀이 남아돌게 됨에 따라서 14년 만에 쌀 막걸리와 약주가 다시 나왔습니다. 전국 1,500개 양조장에서 만든 쌀 막걸리는 유통 과정에서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통술 판매 이외에 1리터 들이 폴리에틸렌 병에 담은 것을 함께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국의 주점에서는 쌀 막걸리를 찾는 손님들이 크게 늘어나 공급이 달릴 정도였습니다.
<쌀막걸리 생산>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1076

편의식 시장 확대 및 외식문화 확산

경제가 발전하면서 농촌에 살던 사람들도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사하게 되었다. 바쁜 도시 사람들은 간편한 먹거리가 필요했고 이 영향으로 통조림 등 편의 식품 시장이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88 서울올림픽 등 대규모 행사가 많아지면서 외식문화가 발전되고, 외식 단골 메뉴였던 짜장, 햄버거, 피자 등이 집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즉석 식품으로 출시되면서 사랑받기 시작했다.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나가다

1980년대 샘표는 편의식 시장의 확대에 발맞추어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식품군을 출시하고,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통해 종합식품회사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80

유리에서 페트로, 혁신을 주도하다

1980년 이전 간장제품은 유리병에 담겨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빈 병 회수, 번거로운 세척 과정, 유통 중 파손 등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었다. 샘표는 식품업계 최초로 PET용기를 도입하였고, 업계 전반에서 편의성과 위생성에서 유리보다 월등히 우수한 PET로 용기를 교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이 때 빈병을 세척하는 일을 하는 계약직 여사원들이 모두 해고되는 위기에 처하였으나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던 날 모두 정직원으로 발령받은 일화는 '구성원의 행복'이라는 샘표 핵심가치로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1981

국풍81, 서울로 올라온 각지의 향토음식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여의도에서 열린 대규모 문화 축제인 국풍 81은 지방의 여러 음식들이 서울에 소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김에 밥을 손가락길이 정도로 말아서 젓갈을 많이 넣은 깍두기와, 빨갛게 양념한 반건조 오징어를 곁들여 먹는 ‘충무김밥’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도 국풍81에서 소개되면서부터였다.

민족 단합의 축제 국풍 81이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전국 대학생 민속 국학 큰 잔치인 국풍 81은 개막 첫날 광화문에서 시청 앞을 거쳐 서울역 광장에 이르는 국풍 행렬로 시민들에게 선보였습니다. 5월 29일 여의도 광장에서 막을 올린 국풍 81 큰 잔치는 외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분별 없이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 것을 내세우면서 우리나라의 바람, 즉 국풍을 일으키는 가운데 외래 문화도 건전하게 수용하자는 뜻에서 열렸습니다. 결의 신바람, 결의 흥, 결의 멋을 내세운 이번 행사에는 전국 각 대학생 만여명이 참가해서 민속제와 전통 예술제 그리고 젊은이 가요제와 연극제 등을 펼쳤습니다. 국풍 장사 씨름판과 팔도 굿, 남사당 놀이가 한강변에서 벌어졌고 팔도 명산물 시장이 개설되서 인기를 모았습니다. 닷새동안 펼쳐진 잔치마당에는 연인원 천만명이 관람한 가운데 이 행사가 거대한 민중의 축제로 승화되었으며 민족 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위한 보람찬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81년 국풍 81>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1178
1982

참치 통조림 국내 첫 시판

1982년 12월 동원산업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참치를 가공해서 만든 참치 통조림이 시판되었다. 출시 당시 가격은 200g당 1천원이었다.

국내 최초의 편의점 롯데 세븐 개점

1982년 11월 23일, 국내 최초의 편의점인 '롯데세븐' 개점. 40평 규모, 연중무휴, 7~23시 영업

1983

이천 시대를 열다:샘표 이천 공장 착공

최고의 생산 시설을 갖추기 위해 부지 선정은 물론이고 설비 주문, 제작까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이천 공장은 1983년 착공, 4년간의 준비 끝에 가동을 시작하였으며, 샘표 간장 전 제품의 베이스를 생산하고 있다.

1984

보양식, 음지로 가다:서울시 보양식업소 단속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개고기, 뱀탕, 토룡탕, 굼벵이탕, 개소주 등을 ‘혐오식품’으로 규정하고 이를 서울 도심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단속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보양식집들이 외진 골목으로 이전하거나, 판매가 허용된 면 단위로 이전하게 되었다.

1985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개장

1985년 5월 11일 동양최대규모를 자랑하는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이 개장했다. 서울시가 농수산물의 유통구조를 개선, 가격안정을 꾀하고 생산자, 상인, 소비자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개장 이후 약 30년 동안 손가락 경매를 이용했으나 현재는 전자식 경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도대륙 동쪽에 위치한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의 후센 무하메드 에르샬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비동맹 중립정치를 펴는 제3세계 국가 중의 하나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에르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방글라데시 경제개발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합작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양국 합동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에르샬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방글라데시가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세계은행과 국제 통화기금 서울총회 준비상황을 관계 장관들로부터 보고 받은 자리에서 황금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 회의는 체육올림픽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행사인 만큼 정부 각 부처는 긴밀한 협조체제 아래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도록 하고 모든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한편, 교육개혁 심의회 첫 정기회의를 주재한 전두환 대통령은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를 다지는 일이므로 우리의 실정에 맞고 국가의 장기적 목표에도 부합되는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제3차 남북경제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려 남북 간의 물자교류 및 경제협력 추진과 남북 경제협력 공동위원회 설치에 대한 합의서를 채택하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제1차 회의에서 양측이 제시한 교역대상 물자와 제2차 회의에서 북한 측이 제의한 남북 경제협조 공동위원회의 제안을 이번에 우리 측 제안 속에 모두 발전적으로 흡수해 합의를 보기에 이르렀는데 다음 경제회담을 9월 18일 판문점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대전에서 광주까지의 호남고속도로 4차선 확장공사가 86년 말 완공을 앞두고 차질 없이 진척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대전 논산 간 48.5킬로미터 구간은 금년 8월 말에 준공 예정인데 도로의 포장은 시멘트 콘크리트로 하고 표층은 아스팔트로 처리합니다. 170킬로미터 전 구간이 완공되면 광주 대전 간을 현재 2시간 50분대에서 1시간 40분대로 달릴 수 있습니다. 4대강 유역 농업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전라북도 옥구군 성산면에서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까지 1,841미터의 금강 하구를 막는 둑 공사가 활발히 진척되고 있습니다. 제1단계 공사인 이 공사는 유역 면적 98만 3천 헥타르의 금강 하구에 거대한 인공 담수호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이미 배수관문을 설치하기 위한 가물막이 공사가 끝났고 지반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돌망태와 사석을 넣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 금강하구 농업종합개발사업은 91년까지 완공예정인데 이 공사가 끝나면 4만 3천여 헥타르의 새 농경지가 조성되며 이 지역 일대는 가뭄과 홍수가 없는 전천후 낙토가 될 것입니다.
바다를 메워 가꿔 놓은 간척지의 푸른 초원입니다. 전라남도 무안군의 4개 읍면 8개 마을의 연안을 막은 창포 간척지가 사료용 초지조성에 성공한 것입니다. 2년 전에 완공된 1,500헥타르의 간척지에 유당농원에서는 1차로 48헥타르의 사료작물을 파종해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전 과정을 기계화한 유당농원에서는 오는 1990년까지 740헥타르의 초지조성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 간척지 초지조성의 성공은 전국 미개발지역의 청신호가 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 간척지 가운데 염분이 제거된 일부 지역에서는 올해 처음 모내기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산업재해가 늘어나고 대형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500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나서 이로 인한 손실이 연간 7천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재해 문제의 해결은 우리 현실이 안고 있는 크나큰 과제이며 안전제일이란 말은 백번을 되풀이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순간적인 부주의로 인해서 재해를 입은 역군들 이들을 위해 근로복지공사에서는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에 화성요양원을 개설했습니다. 산재근로자 전용시설인 이곳에서는 충분한 치료와 요양은 물론 취업지도도 해줍니다.
장마철이 다가왔습니다. 서울시 구로구청에서는 수해 상습지역에 양수기를 미리 배치하는 등 수해 방지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제방을 보수하고 교량을 건설 또는 보수하는 등 취약지구의 점검이 한창입니다. 때를 같이해서 각 가정에서 미리 손을 써 다가올 장마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편, 중앙재해대책본부는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미사리에서 85 방제 모의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미사리 주민 150여 명이 한강 범람으로 갑자기 고립된 상황을 가상해서 헬리콥터와 경찰 경비정, 고무보트, 바지선 등을 동원해서 신속히 구조해 내는 훈령이었습니다. 올해만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서 수마로부터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겠습니다. 서울 강동구 가락동에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16만 6천 평 대지에 6만 평 규모의 건물을 갖춘 이곳 도매시장에서는 과실류와 채소류, 생선류, 건어류, 육류 등을 하루 4천6백8십 톤씩 취급하고 있습니다. 가락시장을 이용하면 생산자는 유리한 조건으로 상품을 팔고 값도 제때에 받게 되며 소비자는 유통단계가 축소되기 때문에 싼값으로 농수산물을 살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원로작가 초대전에 장성우, 육영채, 김경승, 김충현 씨 등 네 분을 초대했습니다. 우리 화단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긴 원로작가들의 공적을 기리고 한국미술의 정립을 도모하기 위한 이 초대전에는 2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됐습니다.
한편, 오늘의 한국조각을 조망할 수 있는 중진 중견작가 59인 초대전이 서울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조각전은 우리나라 조각계의 새로운 창조정신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집니다.
서울신문사가 새로 발행하는 스포츠서울이 6월 22일에 창간됐습니다. 매일 아침 12페이지씩 펴내는 스포츠서울은 한국일보사의 일간스포츠와 더불어 우리나라 체육발전의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제5회 아산기 쟁탈 전국수영대회 겸 유니버시아드대회 파견선수 선발전이 서울 잠실수영장에서 펼쳐졌습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 일반부 선수 540여 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경영, 수구, 다이빙의 세 종목으로 나누어 실시됐는데 첫날부터 대회 신기록이 나오는 등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의 성과보다 더 많은 메달을 86년에 기대해 봅니다.
11개국 12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열전 17일간의 경기를 펼친 제15회 대통령 컵 국제축구대회 우리나라는 88올림픽 팀과 월드컵 대표 팀이 출전해서 준결승전에서 각각 브라질과 이라크를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붉은 유니폼이 월드컵 대표 팀이고 청색 유니폼이 아우인 88올림픽 대표 팀입니다. 결국, 후반 29분에 전병규 선수가 결승골을 성공시킴으로써 월드컵 대표 팀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가락동농수산물시장>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N0001500
1987

양조간장의 다양화:샘표 양조간장 500 출시

1987년 이천 공장 준공 완료 이후 다양한 양조간장이 출시되었다. 특히 6개월 이상 정성껏 발효, 숙성시킨 샘표 양조간장500은 조화로운 맛과 향으로 모든 요리책의 기본 간장이 될 정도로 크게 인정받았다.

함께 만들어가는 샘표:제안제도 도입

1987년부터 시작된 ‘제안제도’는 오늘날까지도 샘표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제도이다. 업무 중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직원에게 포상을 함으로써 근무 환경 개선,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얻고 있다.(연 평균 제안 건 수: 3,058건)

1988

음식, 문화가 되다:88 서울올림픽 개최

음식이 유행에서 문화현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국제교류가 빈번해지며 해외 유명 외식브랜드들이 잇따라 도입되었고 국내 외식시장은 양적, 질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88올림픽 대회중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에 모인 인파>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75139
<88올림픽 붐조성 행사-거리질서 캠페인>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T0075553
정성껏 기른 것으로 모두 흰색이라는데 큰 특징이 있습니다.
성화가 들어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옹이 성화를 들고 들어옵니다.
임춘애 선수가 이어 받습니다. 임춘애 선수가 성화를 이어 받습니다.

[아나운서 : 베를린 올림픽대회 금메달 수상자인 원로 체육인 손기정씨와 아시아 경기 대회 육상 스타인 임춘애 선수입니다.]

열아홉살. 지금 이대생. 우리나라 중장거리의 여자 대표 선수 임춘애. 아시아 경기 대회 3관왕. 이번 제24회 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지난 8월 23일 그리스 헤라 신전에서 열 여섯명의 여사제를 거드린 수석 여사제 이자스칼루가 태양열을 받아 처방한 성화.
그리스 봉송을 거쳐 비행기로 방콕을 거쳐 지난 8월 27일 제주도에 도착한 성화. 그리고는 22일간 61개 시 41개 구 85개 군 등 전국을 달린 끝에 지금 우리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우리 모두 가슴 마다에 점화돼 하나의 불꽃으로 타오를 성화. 성스러운 불. 악과 부정과 분열과 갈등과 부패와 불행 등 모든 것을 살라버리고 선과 평화와 화합과 정진과 번영과 행복과 풍요를 가져오는 성화.
이제 운동장을 한바퀴 돈 뒤 점화자에게 인도될 성화. 운반하는 최종 주자 임춘애.

# 성화 점화
[아나운서 : 최종 성화 주자 임춘애 선수로부터 성화봉을 인계 받는 세 사람의 점화자는 체육계, 학계, 예술계를 대표해서 김원탁씨, 정선만씨와 손미정양입니다.
김원탁씨는 건국대학원 재학중인 마라톤 선수고 정선만씨는 한반도 최서남단의 소흑산도의 국민학교 교사입니다. 손미정양은 서울예술고등학교 무용과 3학년으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예술 지망생입니다.]

성화 점화자. 학계 대표 정선만 소흑산도중 교사. 김원탁 마라톤 선수. 손미정 서울예고 학생, 고전 무용 전공. 하늘에 오르듯 20m의 성화대를 지름 6m의 원반 성단기를 타고 올라갑니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세 명의 점화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정선만 소흑산도중학교 교사. 1958년생입니다. 부인은 목포 유치원 교사.
김원탁 마라톤 선수 대표. 스물 네살. 동양 나이론 소속. 85년 조선 마라톤 대회 우승.
손미정 1970년생. 서울예고 학생. 고전 무용이 전공. 문화계 대표로 선발됐습니다.

[박수 소리]

지구촌 무대 지구 가족 모두가 출연하는 대서사극. 그 중에도 결정인 성화 점화.
시선을 하나로 묶고 마음을 하나로 녹이는 성스러운 불꽃. 우리는 지금 모두 하나이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파란 하늘에서는 오색 연막을 품은 다섯개 비행기의 축하 비행. 성화대는 높이 22m 화반 지름이 5.5m로 김수근씨가 설계한 것입니다.
바로 한국의 촛대를 보고 생각되는 성화입니다.

[아나운서 : 올림픽 선서가 있겠습니다. 선서를 대표해서 대한민국 대표단의 허재/손미나 선수가, 심판을 대표해서 대한민국의 이학래 심판이 선서를 하겠습니다.]

선수 대표 선서가 먼저 있겠습니다. 남자 허재. 농구 대표 선수로 스물 세살. 기아 소속. 188cm에 85kg의 체중.
핸드볼 골키퍼로 활약하는 손미나. 여자 대표. 스물 네살. 원강대학 재학중. 165cm, 62kg의 체중입니다.
이번에 대회에 참가한 160개국 기수단. 선수 대표 선서를 할 허재, 손미나 선수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허재/손미나 : 선서. 나는 올림픽 대회에 관한 규칙을 존중하고 이를 준수하면서 스포츠의 영광과 팀의 명예를 위하여 진정한 스포츠맨십의 정신으로 올림픽 대회에 참가할 것을 모든 선수의 이름으로 서약합니다. 선수 대표 허재. 손미나]

[박수 소리]

세계인의 앞에서 정정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을 선서한 허재. 손미나.
이어서 심판 대표 선서. 이학래. 유도 심판. 쉰살. 국제 유도 심판 위원입니다. 한양대학교 체육대학장. 64년 도쿄 올림픽 참가.

[이학래 : 선서. 나는 본올림픽 대회에서 올림픽에 관한 제반 규칙을 존중하고 준수하면서 진정한 스포츠맨십의 정신으로 공평 무사하게 직무를 수행할 것을 모든 심판을 대표하여 선서합니다. 심판 대표 이학래.]

[박수 소리]

#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뒷마당
이제 뒷마당 잔치가 펼쳐집니다.

# 좋은 날
# 강복과 차일춤
처음 세상이 열리고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지내던 좋은 날의 광경이 펼쳐집니다. 하늘의 신비스러운 기운 받은 땅의 기쁨을 기리고 하늘의 복을 비는 춤입니다.
안무총괄 김백봉. 협동안무 김말애. 작곡 김희조. 영등포여상 800명의 학생들입니다.

스물 두 명의 검은 독수리 고공낙하팀이 4000m 상공에서 주 경기장으로 낙하합니다.

[박수 소리]

이어서 국제 낙하산 연맹 소속 외국인 쉰 네명이 공중에서 올림픽 마크를 만들고 있습니다. KBS는 특수카메라 두 대를 사용해서 여러분께 이 장면을 자세히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4,000m 상공에서 둘레 830m 밖에 안되는 주 경기장으로 정확하게 떨어집니다.

[박수 소리]

팔백명의 차일춤 무용수들이 고공낙하 대원들을 맞으며 복을 비는 춤을 추고 있습니다.
낙하산이 무용수들의 파란 장막에 의해 차일로 바뀝니다. 우리는 축제가 있을때마다 차일을 치고 잔치를 벌여 왔습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차일은 하늘의 축복이며 잔치로 들뜬 사람들의 마음, 바로 그것입니다. 온 마당이 펄럭이는 차일로 해일같은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 화관무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룬 태고의 태평성대를 기리는 화관무. 화관무는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시대를 표현하는 춤입니다.
안무총괄 김백봉. 협동안무 문인숙, 김현숙. 작곡 김희조.
경희대, 대동상고, 영광여상 1450명의 학생이 펼치는 화관무는 예식성이 강하고 규율 있는 궁중 무용이므로 복식, 머리 장식, 대/소도구는 조선 왕조의 장식적 전통성을 표현하고 있고 색채는 단청, 삼태극, 색동에서 보여지는 전통적인 다색을 가장 화려하게 살려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박수 소리]

# 혼돈
이제 태평성대가 가고 불화와 갈등이 시작되는 혼돈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박수 소리]

안무총괄 송 범. 협동안무 김복희. 작곡 김정길.
국립무용단, 국립국악원, 선봉무용단, 중앙대, 한양대 학생 등 846명의 출연자들이 세계 60개국의 전통 가면 198 종류 838개를 쓰고 나와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창조와 파괴.
모든 인간의 가치와 성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대립과 분열로 흩어져 난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념과 인종과 성별이 갈려 불협화음을 만들어 냅니다.

키를 높이 세우고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장대 가면들이 나타나 주위를 맴돌고 있는가 하면 지붕 위에는 처용, 먹중, 말뚝이, 양반, 할미, 도령, 머슴 등 우리의 탈춤의 대표적인 가면들.
가면을 구경하고 있는 바로 우리들을 또 담너머에서 구경하는 가면들이 있습니다.

[박수 소리]

이제 혼돈의 세계는 끝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는 이 혼돈을 극복하게 됩니다.

# 벽을 넘어서
인종의 벽, 이념의 벽, 빈부의 벽. 너와 나를 가로막는 무수한 경계의 벽을 넘어서 모든 사람이 한 곳에 모이니 서울은 세계의 마당이 되고 인류는 다시 하늘, 땅과 더불어 하나가 되다.
벽이 무너진 자리에는 새싹이 트고 분단의 아픈 상흔마다 새살이 나니 맨 처음 햇빛이 천지를 비추던 그날처럼 신명의 어깨춤이 우주의 내일을 연다.

[기합 소리]
[박수 소리]

지구는 둥글지만 그것은 지금 많은 벽들로 분단돼있습니다.
그러나 미동 국민학교 학생과 비호 태권단원 등 1,008명이 뛰어들어 분단의 벽을 넘어 화합의 자리에 불과한 온 인류의 의지와 그 힘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박수 소리]

# 정적
[박수 소리]
이 어린이는 1981년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서울 올림픽 개최가 발표되던 날 태어난 어린이 가운데 88 호돌이로 뽑힌 윤태웅 어린이로 서울 잠원국민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 새싹
정적이 지나간 자리에 새싹이 돋았습니다. 1,200명의 삼전국민학교 어린이들이 후프, 줄넘기, 바람개비, 제기차기를 하고 놀이를 펼칩니다.
안무총괄 이덕분. 작곡 이건용.

[박수 소리]

놀이 문화의 원형을 보여줌으로써 때묻지 않은 인류의 새로운 탄생을 표현한 어린이들의 새싹춤이었습니다.

# 화합
화합의 세계가 고놀이로 펼쳐집니다.
행사총괄 오태석. 협동안무 박병천, 국수호. 작곡 박범훈. 광신상고, 성암여상, 선봉고놀이팀, 선봉농악대 1,450명이 펼칩니다.
고놀이의 '고'는 옷고름, 고매듭 등에서 온 말로 짚을 소재로 만든 고를 기구로 양의 홍색진영과 음의 청색진영으로 나누어 승부를 겨루는 놀이입니다.

# 한마당
드디어 둥근 지구처럼 세계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랑스런 모든 지구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눈부신 햇살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그간 올림픽을 치른 나라들의 나라꽃. 식물의 세계입니다. 무궁화, 장미, 백합, 벚꽃 등 일흔 여덟개 나라의 나라 꽃.
이어서 동물의 대표로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인 개, 비버, 곰, 독수리, 호돌이 등이 앞장 선 가운데 150개가 등장합니다.
인간 가족 600명으로 구성된 무용수들. 그리고 헝가리, 폴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세네갈,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인도네시아, 일본, 뉴질랜드, 미국, 페루 등 12개국 360명의 무용수들이 등장합니다.
동서남북, 뜨거운 나라, 추운 나라, 숲의 나라, 바다의 나라, 자랑스런 인간 가족들의 모임입니다.
남문과 북문 등 열 여섯개의 다리를 통해서 육천여명의 개회식 전 출연자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서 운동장이 가득하게 메워집니다.
꽃차를 탄 귀여운 아이들이 행진하고 있습니다. 1981년 9월 30일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 발표되던날 태어난 서울 올림픽의 살아있는 마스코트 8명의 호돌이, 호순입니다.

# 손에 손잡고
[노래 :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 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Everytime we give it all We feel the flame eternally inside us Lift our hands up to the sky The morning calm helps us to live in harmony for all time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Hand in hand we can start to understand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Arirang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Hand in hand we can start to understand Breaking down the walls that come between us for all time Hand in hand Hand in hand Hand in hand ]

[박수 소리]

[아나운서 :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개회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자리를 채워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16일간의 경기가 이곳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힘 마디를 겨루는 선수들이나 관전하는 모든 분에게 보다 큰 영광이 있길 기원합니다. 안녕히가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한마당이 되었습니다. 서로 미워하지도 말며 서로 속이지도 말며 서로 다투지도 말며 오직 사랑만으로 한세계 한가족이 돼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즐거운 날, 아름다운 날, 축복받는 날, 천지창조 첫째날 아침, 태초의 빛처럼 쏟아지는 노래, 손에 손잡고 다함께 불렀습니다.
이제 개회식이 끝났습니다. 160개국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우정과 열정과 힘을 겨루면서 젊음의 꽃밭, 세계의 광장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16일간 값진 땀을 흘릴 것입니다.
파랗고 높은 하늘, 상큼한 바람, 싱그런 내음, 그래서 더욱 좋은 날. 그래서 더욱 알찬 큰 잔치. 그렇게 오랜 시간 정성 다해 마련한 잔치 마당이어서 벅차기만 한 가슴입니다.
거리마다 꽃탑이요, 구석마다 화분이요, 곳곳에 축하 글귀, 길목에는 환영 간판, 청사초롱이 밤길을 밝히고 만국기가 나부끼고 하늘에서 오색 풍선 나르고 강에는 살색기 펄럭이니 이 땅은 온통 축복으로 가득합니다.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아들이 스스로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해외동포들도 함께하자며 가게 문 닫고 학교 쉬어 가며 달려왔습니다.
성화 봉송 길에 꽃 한송이 더 심었고 거리 청소 주변 단장에 모두가 나왔습니다. 내 평생 이런 경사는 처음이라며 할아버지는 활짝 웃었습니다.
언제 또 이런 기회 있을까보냐, 국민학교 어린이도 구슬땀 흘렸습니다. 참여의 기쁨, 함께 하는 보람. 하나되는 큰 뜻 위해 이렇게 우리는 모두가 나섰습니다.
가슴 속 마다 큰 희망, 큰 소원 품으니 그것은 바로 세계는 하나요,인류도 하나요, 오직 평화와 화합과 전진만이 있는 지구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손에 손잡고 어깨 서로 맞대고 한마음으로 깨는 아픔 고통 이겨 하나의 땅 하나의 사람 하나의 기쁨을 창조하려는 하나의 용트림이 여기 있습니다. 하늘의 축복이 햇살되어 비춥니다.
<제 24회 서울올림픽대회 뒷마당 화합(고놀이), 한마당, 손에손잡고>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CEQ0001330

더 좋은 먹거리를 찾게 된 사람들

가구당 소비 지출액이 크게 증가하면서 식료품비 지출 역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맛있고, 깨끗한 먹거리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외식 메뉴가 다양해지고 외식업의 규모 또한 크게 성장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우리의 간장이 다양해지다

식생활의 고급화로 인해서 간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도 늘어났다. 1990년대에 이르러 기호와 용도에 따라 간장의 종류를 구별해서 사용하는 시기로 접어들었으며, 샘표는 끊임없는 연구와 다양한 제품개발을 통해 장(醬)시장을 선도해나갔다.

1992

특급진간장 금S 출시

1993

국내 최초 할인점, E-Mart 개점

1993년 11월 12일 가격파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국내 최초의 할인점 이마트가 창동에 개점했다. 할인점의 등장은 백화점과 재래시장이 주도하던 한국 유통업계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식품 역시 싼 가격으로 대량 공급하여 소비자들도 가정마다 여러 날 또는 일주일 단위로 저렴한 가격으로 식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소비습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1994

양조간장 701 출시ㆍ양조 국간장 출시ㆍ저염간장 출시ㆍ감염간장 출시

1995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자:
HACCP 국내 도입

1995년 12월 25일 HACCP이 국내에 도입되었다.

※ HACCP이란?

원료, 제조, 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위해한 물질이 식품에 섞이거나 식품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각 과정의 위해요소를 사전에 확인·평가하여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사전예방적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이다.

※ HACCP의 역사

1959년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비행사용의 완전무결한 우주식량 개발을 위해 Pillsbury사에 식품 제조 위생관리 체계를 개발 의뢰하였으며 그 결과로 HACCP이 만들어졌다. 1993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HACCP을 식품위생관리지침으로 채택, 적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각국에 HACCP 제도 도입을 권고하였다.

1996

유통시장 전면개방

유통시장 전면개방으로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증가, 성장하여 판매 식품목이 더욱 다양해졌다.

1997

경제 위기와 식탁의 간소화

IMF라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소비패턴은 식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반찬 수 줄이기, 시장 덜 가기, 외식 줄이기, 음료 또는 주류와 가공식품등의 구매 감소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식생활을 계획할 때 가장 고려한 요소는 가격이 되었으며 국내산 제품과 전통음식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1997

국제규격에 발맞춤하다

1997년 ISO 9001인증을 시작으로 2000년 ISO 14001인증을 받으며 국제적인 표준제품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임을 인정받았다.


1998

잘 만들기에서 맛있게 즐기기로:
요리 프로그램의 변신

요리법을 전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던 요리프로그램이 오늘날과 같이 ‘요리하는 즐거움’ 자체에 중점을 둔 예능 프로그램으로 본격 탈바꿈 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KBS 이정섭의 요리쇼(1997)
KBS 삐삐 요리방(1998)
MBC 맛있는 이야기(1998)
SBS 최고의 밥상(1998)
KBS냉장고를 열어라(2001)
SBS 결정! 맛대맛(2003)

1998

신입사원 정기 공개채용 시작

샘표는 1998년 정기 공개채용을 시작하였다. IMF 외환 위기로 불어닥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구조 조정이나 인원 감축없이 오히려 사원모집 광고를 진행하였다. 이는 샘표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지역사회에 기여'라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食, 생존에서 즐거움으로

2000년대에 이르러 국민 소득이 $10,000에 가까워지며 의식주의 수준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에 사람들은 신선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건강 기능 식품의 소비 또한 증가하였다. 한편 점점 바빠지는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에 맞춰 테이크아웃, 1인 가구를 위한 가정간편식 등이 점차 발달했다.

한식의 DNA, 발효로 우리맛을 말하다

2001년 전통 한식간장을 복원해내는 데 성공한 샘표는, 발효를 기반으로 식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식문화에서 중요한 콩발효를 이용하여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는 요리에센스 연두를 개발하였고, 샘표 장 프로젝트,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샘표 장(醬) 프로젝트'라는 샘표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2001

전통 조선간장을 복원하다

우리의 전통 방식이 그대로 담긴 한식간장에 대한 연구를 15년간 계속한 끝에, 전통적으로 선조들이 담가먹던 장맛의 비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하였다. 당시 샘표는 콩알메주 공법 및 제조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국내 최초로 우리맛의 근간이 되는 조선간장을 복원하였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제품을 개발하기보다 샘표가 해야하는 한국식문화의 사명감으로 오랜 시간 집념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002

장류 최초 HACCP 지정

장류에는 HACCP제도 운영 의무가 없었지만, 샘표는 자발적으로 HACCP 기준을 도입하여 인증을 받았다. 이로써 샘표는 믿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만드는 국민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2003

잘먹고 잘 살자:Well-being 신드롬

사회 전반에 불기 시작한 웰빙 열풍이 식품에도 접목되며, 슬로우 푸드, 친환경(유기농)식품, 건강식품 등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2003년 1년 동안, 패스트푸드점의 점포 수가 브랜드별로 10%나 급감했다.

2003

국제공인시험기관(KOLAS) 인증

KOLAS 인증이란 시험 기관이 특정 분야에서 품질을 분석하고 시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주는 제도이다. 즉 샘표가 KOLAS 인증을 받았다는 것은 샘표가 분석한 장류의 품질 시험 결과는 국제적으로 신뢰하여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공인받은 것이다.

식문화 연구소 지미원 개원

식문화 연구소 지미원이 샘표 본사 10층에 개원하였다. 우리맛의 기본인 장(醬)에서부터 요리의 즐거움까지 배울 수 있는 지미원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였으며 셰프, 과학자, 인문학자가 협업하여 식재료 분석, 맛 테스트, 레시피 개발 등 많은 사람들이 우리맛을 즐길 수 있도록 식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2004

대장금, 수랏상을 세계에 올리다

궁중음식을 주제로 한 드라마 대장금이 국내에서 60%가 넘는 기록적인 시청률로 인기를 얻으며 동아시아 각국에까지 수출되어, 우리 전통 음식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대장금 드라마 셋트장의 관광객들> 출처: 국가기록원, 관리번호: DEZ0001853
2004

공장에 꽃핀 문화 예술 : 샘표 스페이스 이천 개관

2004년 11월, 샘표 이천 공장 내에 임직원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갤러리인 샘표 스페이스가 문을 열었다. 문화적인 혜택이 적은 직원들을 위한 공간으로 식당 앞에 갤러리를 위치함으로서 일년에 10회 이상의 전시를 관람할 수있는 구조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직원,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는 전시 뿐 아니라 이천 지역 주민과의 연계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5

건강 스낵 브랜드, 질러 출시

'권태로운 일상에 불을 지른다'는 의미를 가진 건강 스낵 브랜드 '질러'를 출시했다.알땅콩, 고소한 아몬드, 표고버섯과 마늘 등 총 10종을 출시하면서 휴대가 간편한 컵모양의 팩키지로 신세대들의 인기를 끌었다.

2006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된장을 먹입시다:샘표 아이장 캠페인

창립 60주년을 맞은 2006년, 샘표는 아이장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하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장(醬)을 먹입시다'라는 슬로건 아래, 유기농 콩농장, 된장학교, 우리발효학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인 장(醬) 문화에 대해 올바르게 알리고자 하였다. 10년 간 꾸준히 장의 우수성을 알려온 샘표 아이장 캠페인은 2016년 창립 70주년을 맞아 '샘표 아이장 학교'로 명칭과 프로그램을 개편하여 우리 식문화를 알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2007

문화로 고객과 소통하다:메세나 트렌드

2000년대 중반 이후 이전의 문화마케팅은 기업이 미술작품을 구입하고, 예술 인프라를 금전적으로 후원하던 기존 소극적인 지원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가 되기 시작하면서 각 기업들이 각종 문화 프로그램 제작에 직접 참여하거나, 예술가의 작품을 디자인으로 도입하는 등 예술을 고객과의 소통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2008

더 푸르게, 더 건강하게

웰빙 열풍과 함께, 2000년대 후반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등 동물 관련 질병이 발생하면서 동물성 재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대한 반향으로 식물성 재료가 새로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10

세계, 발효에 주목하다

세계 정상급 셰프들과 해외 유수 언론인들에게 한식의 맛과 매력을 알리기 위해 '한국의 발효음식'을 주제로 하여 펼쳐진 푸드 페스티벌 '서울 고메 2010'. 샘표는 이 행사에 한국을 대표하는 발효기업으로 참여하여 우리 발효의 맛을 소개하고, 세계로 나아갈 발효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우리맛 연구의 시작, 연두

한국의 맛내기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그 첫 결과물인 요리에센스 연두를 선보였다. 연두는 콩을 자연발효한 100% 콩 발효 맛내기 제품으로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 요리의 제 맛을 찾아주는 요리에센스로 샘표가 75년간 연구해온 발효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다.

2010

건강하게, 즐겁게, 함께 먹는 밥: 소셜 다이닝의 등장

만혼의 일반화, 독신 인구 증가 등의 이유로 1인 가구의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소포장 단위의 식료품 판매가 활성화되고, 1인 고객을 위한 식당이 생겨나는 등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일컫는 ‘혼밥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나홀로 식사를 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닌 즐거운 소통이 있는 식사를 원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욕구가 반영되어 소셜 다이닝이라는 새로운 식사 문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이와 SNS을 통해 만나 함께 식사하는 소셜 다이닝은 바쁜 현대 사회 생활 중에도 건강한 식생활이라는 관심사를 타인과 공유하고자 하는 문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

샘표 이천 공장이 거대한 캔버스가 되었다. 회색 벽의 공장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를 신진 아티스트 그룹 ‘동방의 요괴들’과 함께 작업했다. 샘표 아트팩토리에는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운 공간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리 발효의 맛이 소비자의 식탁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2012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샘표 장(醬) 프로젝트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한다'는 비전 실현을 위한 첫 걸음으로 2012년 샘표는 장(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한국의 맛인 발효를 통해 세계인의 식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이 샘표 장(醬) 프로젝트의 목표이다. 샘표는 스페인의 알리시아 요리과학 연구소와 협업하여 장(醬)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및 장(醬)을 유럽 현지 음식에 이용하는 방법을 도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조디 로카(Jordi Roca)
아주 맛있는 조합이 나올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키케 다코스타(Quique Dacosta)
우리의 요리를 더 풍부하게 해줄수 있어요.

호안 로카(Joan Roca)
환상적인 세계입니다.

샘표 & 알리시아 장 프로젝트
장의 지중해 혁명

최정윤 쉐프 & 디렉터, 장프로젝트, 샘표식품
이제 어떻게 이 장을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 알리시아에 왔습니다.

Toni Massanes 디렉터, 알리시아 연구소
훌륭한 식문화는 다른 식문화의 장점, 재료, 테크닉 등을 접목시키면서 성장합니다. 우리에게는 한국같이 무언가 더 훌륭한 식문화가 필요했습니다. 샘표와 알리시아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서로의 식문화를 이해하고, 여러 지식을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Jaume Biernes 헤드쉐프, 알리시아 연구소
한국에서 일주일간 지내면서 한국음식에 푹빠져서 살다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먹고 싶었던게 바로 장이었죠.

[남자 목소리]
어떻게 장이 스페인 요리를 하는데 도움이 될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장은 어떠한 인공첨가물도 넣지 않고 발효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순식물성 식품입니다.

Elena Roura 영양파트 디렉터, 알리시아 연구소
장을 사용할 경우 조리시간을 줄여 주면서 재료 본연의 맛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뿐만 아니라 지방의 양도 훨씬 적죠.

[남자 목소리]
첫번째 단계에서는 계속 요리를 했습니다. 요리, 요리, 요리만 했죠. 그래서 얻은 결론은 유럽음식에서 장은 한국음식에서 쓰이는 것과는 다르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죠.

Marc Puig-Pey 쉐프, 알리시아 연구소
장을 우리의 음식에 사용하면서 우리의 인식 속에있는 장의 복잡하며 특별한 향을 바꿔가는거죠.

[남자 목소리]
우리는 매일 연구하고, 연구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 나무(Jang Tree)를 키우는 것입니다.

Nuria May 장프로젝트 담당 쉐프, 알리시아 연구소
장은 단지 조미료가 아니라 재료 각각의 특별한 맛을 향상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재료, 어떤 조리방법으로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이점이 아주 놀라워요.

박진선 CEO, 샘표 식품 회사
우리 한국의 장 맛이 아주 독특한 맛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 맛을 우리 유럽 사람들한테도 알리는 것이 필요하겠다. 유럽 사람들도 우리 장 맛을 즐길 수 있게 그런 기회를 만들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자 목소리]
프로 쉐프들을 위해 conceptual map을 만들었습니다. 요리사들에 의해, 요리사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여기서 알리시아 연구소의 차별점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저희가 알아낸 이 방법을 더 자주 사용하고 더 다양하게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 목소리]
새로운 재료를 소개하기 위해 정말 환상적인 방법입니다. 간단하고 너무 부담스럽지도 않게 알리시아 연구소 같이 중요한 그룹이 1년동안이나 연구한 것을 알리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죠.

Jaume Biernes 헤드쉐프, 알리시아 연구소
우리는 한 그루의 나무를 키웠습니다. 각각의 다른 장 제품들에서 수많은 가지가 퍼져나가는거죠. 그리고 일부러 열매는 맺지 않았습니다. 요리사들이 장을 이용하여 만든 레시피, 그 레시피가 열매이기 때문이죠.

키케 다코스타(Quique Dacosta) 쉐프, 키케 다코스타 레스토랑
우선 스페인 요리에서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재료와 장을 접목시켜서 익숙해져가는 작업을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다가가면 나중에는 장을 이용한 요리법이 우리 요리의 중요한 기둥으로 발전할수도 있어요.

호안 로카(Joan Roca ) 쉐프
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 합니다. 아주 흥미롭죠. 장은 스페인 요리에 잘 어울립니다. 스페인 요리에서 장의 사용 가능성이 열려있고, 또한 다양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아주 재밌습니다.

상훈 드장브르(San-hoon Degeimbre) 쉐프
제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장을 매일 씁니다. 고추장을 디저트에 사용하기도 하고 또 다른 여러가지 방법으로 장을 사용합니다. 장을 이용한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매우 흥미로워 하죠.

앨버트 아드리아(Albert Adria) 쉐프
인공 조미료와는 달리 자연스럽게 맛을 완성시켜줍니다. 장은 오늘 유럽에 소개하고, 내일 바로 유럽요리에 사용될 수 있을 만큼 가능성이 있습니다.
<Sempio & Alicia Jang Project_la revolucion mediterranea del Jang>
2012

한식, 고급을 입다

이탈리안, 프렌치 요리가 고급 다이닝의 주류를 이루던 2000년대 후반,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젊은 셰프들이 대거 귀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중 일부 셰프들은 서양에서 익혀온 모던한 터치를 한식에 적용한 새로운 스타일의 요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식재료를 양식 기법으로 조리하여 정교하게 담아내고, 장, 식초, 젓갈 같은 한국 고유의 맛을 더한 새로운 차원의 한식은 '뉴 코리안', 혹은 '모던 한식'이라고 불리며 한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12년에는 뉴코리안 스타일 다이닝 ‘정식당’이 뉴욕에서 미슐랭 스타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2013

샘표 75년 발효기술의 중심, 우리발효연구중심

충북 오송 생명과학단지 내에 우리나라 최초의 발효전문연구소인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설립하였다.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은 서울, 이천, 영동 등 각 분야별 연구조직을 통합하여 우리 식문화의 중심이 되는 발효를 통해 우리맛과 우리 건강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소로 설립되었다. 특히 연구원들의 행복, 창의성에 중심을 두고 컨셉 및 디자인이 진행되어 새로운 개념의 연구공간으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샘표 맛있는 추억 캠페인

샘표는 2013년부터 '맛있는 추억'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맛있는 추억을 그리다/이야기하다/남기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들 그림대회, 에세이 모음, 사진 모음 등을 진행하여 많은 가족이 참가하였다. 이 캠페인에서 선발된 어린이의 그림은 매년 샘표간장의 리미티드 에디션 라벨로 디자인되어 전국에 판매된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즐겁고 행복한 음식이 가장 맛있는 추억이 된다'는 의미를 가진 샘표 맛있는 추억 캠페인은 외부 전시까지 이어져 많은 호응을 받았다.

2014

안방극장을 장악한 셰프테이너

2014년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명 셰프들이 출연하여 어느 집의 냉장고에나 있을 만한 재료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며 스타 셰프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맛집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넘어 셰프들이 예능에서 직접 요리하는 쿡방이 본격적인 유행을 타기 시작하였으며 셰프와 엔터테이너를 합성한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2015

집밥과 한식 레스토랑

바쁜 현대 사회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아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는 유대감에 대한 그리움이 반영된 집밥이 식품업계의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집밥 열풍에 힘입어 기존 서양식이 장악하고 있던 뷔페식 시장에도 한식 레스토랑이 대거 등장하였다.

2016

한식과 Culinary Research Method의 만남, 2016 샘표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

우리맛의 기본은 우리 장(醬), 발효이기에 우리의 DNA가 담긴 한식과 우리맛에 대해 연구하는 샘표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요리를 구성하는 요소인 식문화, 식재료, 조리법, 조리과학 각 분야 최고의 식문화 연구 멘토들과 샘표 우리맛 연구원들이 협업, Culinary research method를 이용하여 우리맛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다. 본 연구는 한식 셰프에게 유용한 정보로 제공될 뿐만 아니라 추후 조리를 배우고자 하는 전문인력에게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이는 한식의 가치를 높이고 우리 식문화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2018

샘표 우리맛 공간 오픈

샘표 우리맛 공간은 2003년 오픈한 샘표 식문화 연구소 ‘지미원’이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 공간이다. 우리맛의 가치를 공유하고, 맛있고 건강한 우리맛을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요리와 강연, 세미나, 다이닝, 각종 팝업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우리맛을 공유하고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다양한 요리 연구를 구체화하고, 모두가 더 나은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연두, 국제 자연식품 박람회 ‘올해의 혁신 제품’ 선정

연두는 ‘2018 국제 자연식품 박람회(Natural Product Expo West)’에서 ‘올해의 혁신적인 제품’에 선정됐다. 연두는 우리맛의 핵심인 콩 발효를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 순 식물성 에센스로, 요리를 쉽고 맛있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품으로 ‘클린 라벨’(유기농, 논 지엠오(Non-GMO), 글루텐프리, 자연발효, 무합성첨가물) 조건을 충족시키고 맛이 훌륭하다는 면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아 890여 개 후보 제품을 제치고 국내 식품기업 최초로 ‘차세대 혁신 제품상(New Hope NEXTY Award)’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9

연두 ‘소비자가 뽑은 올해의 녹색상품’ 선정

연두가 ‘소비자가 직접 뽑은 2019 대한민국 올해의 녹색상품’으로 선정됐다. 한국녹색구매네트워크가 주관하는 ‘올해의 녹색상품’은 전문가·소비자환경단체·소비자 평가단 500여 명이 환경친화적 제품을 선정·시상하는 행사로, 연두는 이번 심사에서 콩과 국산야채 등 순식물성 재료만 사용한 자연발효제품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 받았다. 또 재활용이 가능한 유리병을 용기로 쓰고 분리 배출이 가능한 라벨을 활용한 점도 환경개선효과 부분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통 아시안 소스 브랜드 '티·아시아' 론칭

'티·아시아'는 'Taste of Asia'라는 의미로 베트남, 인도 등 현지 요리의 신비로운 맛과 향을 그대로 담은 정통 아시안 푸드 전문 브랜드이다. 아시아 여행을 하는 인구가 늘면서, 현지에서 먹었던 음식 맛 그대로 집에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의 니즈를 담았다. '티·아시아'의 ‘티(T)’는 맛있는(Tasty)의 T를 의미하며, 로고 디자인 또한 왕궁, 사원 등 아시아 현지 전통 건축물의 문양 특징을 그대로 살렸다.

2019

온라인쇼핑 확산

1~2인 가구 증가, 간편결제 서비스 발전, 배송 서비스 강화는 온라인 쇼핑의 지속적인 확산을 불렀다. 바쁜 일상 속, 집에서 편하게 HMR 식품을 배송받아 간편하게 먹는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대면을 선호하는 20·30대는 대형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과 편의점을 선호함에 따라 타깃과 품목에 따른 다양한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2020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온 집밥 트렌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글로벌 확산은 한국 식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나타난 비대면 트렌드로 인해 혼밥문화가 확산되고 외식은 감소하였다. 또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HMR과 집밥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새벽 배송 등 온라인 쇼핑이 20•30세대를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무인화, 자동화, 구조조정 등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다.

2020

'박진선 대표' 금탑산업훈장 수훈, 2대째 영예

2020년 샘표는 20년 만에 산업계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재수훈했다. 2000년에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박승복 회장님에 이어, 2대째 산업계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진기록이다. 이번 수훈은 샘표가 글로벌 매직 소스인 요리에센스 연두를 개발하는 등, 20년 동안 우리 발효를 전 세계로 알리는데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2021

즐거운 요리 혁명, 새미네부엌 브랜드 런칭

75주년을 맞아 5년 간의 우리맛 연구 결과로 요리의 어려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새미네부엌 브랜드를 런칭했다. ‘즐거운 요리 혁명’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처럼 요리가 놀이처럼 즐거워지는 제품들을 선보인다.

'티·아시아' 제품 다양화

동남아 대표요리를 손쉽게 맛보게 하는 요리 소스에 이어 인도와 태국의 색다른 커리, 라씨, 난 등 제품을 다양하게 확장하였다. 신제품들 역시 인도 왕실 요리 셰프인 라릿 모한(Lalit Mohan)과 타이, 동남아 왕실 요리 셰프인 피수티삭 부라나싱(Phisuthisak burana sangha)이 '티·아시아' 연구원들과 2년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탄생했다. '티·아시아'는 향후 아시아의 대표 요리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색다른 맛의 다양한 제품으로 브랜드를 확대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