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정성스러운

따뜻한

숨

드로잉을 ‘작가의 심적 상태’ 또는 ‘감성의 절대화’로 설명했던 말들에 공감 하면서 나는 주변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물들 속에서 나를 대변 해 주는 요소를 발견하기 위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나의 일상 속에 함께하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그 대상들을 그리다 보면 나 자신의 모습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찰나를 포착하고 순간을 그리게 되는 드로잉은 사물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 현재의 내 모습과 같다고 느꼈다.

 주변사물을 그리다 보니 유독 책이 많이 눈에 띄었다. 책이 의미하는 바야 너무 많지만 나에게 책은 잘 버리지 못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내가 움직일 방향과 해야 할 과제를 보여주는 사물이었다. 집과 작업실에는 읽으려고 산 책과 읽고 버리지 못한 책들이 책꽂이를 넘어서 구석에 쌓여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현재 쌓여있는 그 책의 정도까지가 그 모습이 바로 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앞으로 더 많이 쌓일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또 지금처럼 계속 쌓여도 쌓이는 것이 멈추는 순간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더 작은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기만 해 왔다. 그런 모습을 순간을 담고 싶었다.

실의 유동성과 자연적으로 생기는 라인은 내 손끝에서 나오는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선을 만든다. 특히 일상의 사물과 나와의 관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시각적으로도 박히고 풀어지고 하는 과정이 그대로 작업에 보여지면서 실과 드로잉이 어울려 작업을 완성시킨다.

'바느질'하면 생각나는 단어들의 느낌은 대부분 포근하다. 아마도 바느질이 주로 여성, 어머니와 관련있기 때문에 우리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 같다. 샘표 스페이스 2월 전시 「바느질 이야기」에서는 바느질을 모티브로 흥미로운 작품을 보여주는 젊은 여성작가 2인, 이주연과 주예원을 소개한다.

이주연은 섬유예술을 전공한 작가로 자신에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소재인 '실'을 이용하여 좀 더 자유로운 드로잉을 그려내고자 한다. 실의 유동성과 자연적으로 생기는 라인은 연필로 그리는 드로잉과는 또 다른 느낌의 드로잉을 보여준다. 시각적으로 박히고 풀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작업에 그대로 나타나면서 실과 드로잉이 어우러진 작품이 완성된다. 작가는 특히 '작가의 심적 상태' 또는 '감성의 절대화'로 대변되는 드로잉에 주목하며 자신의 주변, 일상의 생활과 사물을 통해 자신의 모습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고자 하였다. 주변 사물을 그리는 과정에서 유독 '책'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작가에게 '책'이란 과거 오래 전부터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이자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며 자신을 대변하는 대상으로 표현된다.

주예원은 조소를 전공한 작가로 수를 놓는 행위를 통해 아픔을 감싸 안아주는 작업을 진행한다. 작가가 제시하는 치유 방법은 바느질이 한 땀 한 땀 모여 상처 나고 결여된 부분을 따뜻한 실로 가득 메워주는 것이다. 빈 곳 없이 차곡차곡 쌓여진 바느질 자체가 서로 얽히고 덮어져 본래의 한 땀 그 자체보다 배로 강해지는 것에 집중한다. 새살이 돋을 때 살이 불룩 튀어나오는 것처럼 치유된 부분은 새살이 돋아나 더욱 따뜻하고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다. 작가는 감싸안고 치유하주고 싶은 대상으로 고흐를 만났다. 고흐가 자신을 쳐다보며 자화상을 그렸을 때 느꼈을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을 짐작해보며 그의 붓 터치를 따라 조심스럽게 그 자취를 따라간다. 어느새 따뜻하고 포근한 실이 고흐의 얼굴 전체를 뒤덮는다.